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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May 02. 2023

나를 환영幻影하는 공간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품었어

알아요... 저는 힘을 빼는 법을 좀처럼 모르는 편이죠. 



'딱 이 집이야!' 

라는 인상은 절대 들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 피아노 교습소가 떠오를 뿐이었죠.









항상 '나의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여동생과 함께 오랜 시간을 한 집에서 살아왔기에 꾹꾹 봉인해 놓았었고, 나중에 결혼하면 '그때'라며, 일도 아닌데 그렇게 돈을 써가며 반드시 그래야겠냐며 애써 현실 회피적인 입장을 일관했다. 그렇게 공간을 꾸미고 싶어 안달이면 일로 하면 되지 않아? 때때로 남들보다 더 시니컬하게 스스로를 채근하기도 했다.


'참 유난스럽다. 너'



그러다 나의 집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는 행위에 깃들여진 정서적 풍족함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그건 직접 감각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머릿속 논리적 상상력으론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한계 너머에 실존하는 감정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어떤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나만의 작업실이 필요했다. 신사동 가로수길 빌라  "레벤즈 하우스"에서 점화된 '나를 환영幻影하는 공간'에 대한 열망이 한 단계 더 도약하며 공간과 일 다시 말해 '공간을 창조하는 나의 일'이 외연을 확장하길 바라며 그에 어울릴 법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풍요롭게 존재감 가득했던 감나무와 커다란 정원이 있던 은평구의 반듯한 이층집. 그리고 예산이 부족해 결국 계약하지 못한 낭만적인 'ㅁ'자 중정을 은밀히 숨겨 놓았던 서촌의 한옥. 이 끝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비해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집은 한참이나 초라한 듯 보였다. 내 삶을 4/5쯤 욱여넣어 돈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내 몸뚱아리와 영혼으로 보완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럴터였다.



내 명의의 두 번째 집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나란 사람처럼) 꽤나 까다로웠다. 하지만 그 까다로움이 무색하게도 금전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조급함에 이끌려 현실과 바로 어이없을 만큼 흔쾌히 타협을 했다. (그런 거 있잖아... 당장 계약 안 하면 다른 사람에게 팔려 버릴 것 같은 뻔한 조급함 말이야.) 



첫째,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일 것 

둘째, 어떻게든 서울 시민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것. 이건 지방비하에 대한 건 절대! 절대!! 아니다. 단지 문화 예술을 늘 가까이서 향유하길 바라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이다.

셋째, 주택 리모델링 전후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만한 형태의 집일 것

넷째, 예산 안에 확보되는 주택일 것

다섯째, 주차 공간이 있을 것



그렇다. 바로 네 번째 항목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 무지하게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이라 불릴 만큼의 공간은 없지만, 지하철역에서 15분은 거뜬히 걸어야 하지만, 동네에 벽화가 그려져 있을 만큼 조금은 낙후된 동네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여름이면 진짜로 사람들이 들어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는 광진구 아차산 긴고랑로 계곡 바로 아랫동네에 대지 33평의 작고 오래된 단독 주택을 매입했다. 난생처음 와본 동네에서 그저 단 두 번 집을 보고 덜컥 계약을 해버릴 만큼 나는 무모하거나 혹은 몹시도 절박했다.


그렇게 반쯤 스스로의 최면에 걸린 상태로 매매 도장을 찍던 그 순간부터 하나의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고 또또 바뀌고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그 계절로 돌아오는 꽤나 길었던 시간 동안, 나는 그저 이 집에 수동적으로 저당 잡힌 듯 보였다. 온갖 호모 루덴스적인 삶은 이 집에 잠식당한 채 그저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무거운 명제만이 내 육체를 그리고 내정신을 냉정하게 관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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