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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Apr 27. 2023

1979년식 오래되고 낡은 단독 주택을 매입했습니다.

가끔만 용기였고 대부분은 무모였다는 자백 같은 그런



"서울 아차산 자락,

1979년식 오래되고 낡은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합니다."


내 삶도 리모델링하는

리추얼한 의식








서울 아차산 자락에 대지 33평의 1979년식 작은 단독주택을 매입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제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저의 가치관과 미학을 담은 오롯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 켜켜이 쌓여진 세월의 더께만큼 손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에요. 반면에 예산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제 본업인 공간 스타일리스트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공간을 위해 무모하게 아니, 용기 있게 선택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모조리 기록할 계획이에요. 이 시간들은 아마도 '나'를 더 잘 알아가는 심리적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도 합니다. 보편적이지 않은 삶의 궤적을 그려온 방황 많던 저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이며, 더 나이 들기 전에 '나다운 삶'을 공고히 구축하는 리추얼적인 의식이 될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수천 번, 아니 설마 수만 번도 더 겪게 될 멘탈붕괴의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 가며 얻은 통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달뜸 VS. 심란함

결국은, 자기 선택에 대한 긍정성



50여 년에 달하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힘주어 손본 적이 거의 없었던 듯, 건물 곳곳 퇴색된 시대의 건축 디테일들을 마치 유적처럼 찾아볼 수 있는 이곳, 누군가들의 흔적이 떠나고 오직 '집'만이 남은 비어져 있는 공간을 바라보며 예상보다 더한 노후도와 남루함에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언뜻 보면 매력 있어 보이는 거실의 나무 문양 천장도 자세히 보면 표면이 마치 화학성분의 비닐이 쪼그라든 듯한 상태여서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죠. 방법은 표면을 샌딩하고 페인팅을 새로 하는 것인데 시공의뢰를 어느 정도 진행했던 업체에서는 작업자조차 구하기 힘들 거라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성의 없거나 혹은 과장된 공포감의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이 당시 예산의 상승만큼 무서운 게 있었을까요.)



'아..... 뭐 괜찮아요. 이 업체는 항상 제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지 않았으니까요.....'


 




좁은 주방과 작은 방이 나란히 공간을 분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방에 대한 로망은 참 없는 편이지만 생활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꽤나 불편할 것이 분명했기에, 이 집의 어떤 공간보다 난감했던 곳은 이곳이었습니다.



길고 좁은, 아니 긴데 좁은 욕실 아니 길기만 한 욕실. 욕실에는 반드시 욕조가 있어야 한다는 제 나름의 욕실 철학(?)이 꽤나 고한 편이었기에 문을 연 순간, 약간의 시각적 충격 아래 이리저리 마구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음.... 뭐라고 쉽게 형언할 수 없는 욕실의 모습은 살짝은 으스스~으스스한 무드마저 자아냅니다.


예전에 마카오의 산바호텔 (Sanva Hotel)이라는 곳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영화 '도둑들' 촬영지로 꽤나 흥미로운 장소였습니다. 카지노가 아닌 마카오의 전통 서린 나름의 헤리티지 공간을 (당혹스럽게) 체험할 수 있었던, 많이 낡고 허름하고 오래되었고, 또 아~~~~~주 많이 지저분하고 옆 방의 PEEPEE 소리도 과감 없이 들리던 곳.


화면으로만 마주한 그 중국식 타운하우스 외관과 20세기 초반의 중국풍 미장센은 마치 저를 영화 '화양연화' 속으로 이끌 것 같았거든요. 결국은 그 진동하던 피피 소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다음날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벽 너머의 그 소리가 상상의 냄새가 되어 제 코를 사정없이 괴롭혔죠. 이 욕실을 보며 내내 그 옛날 마카오의 산바 호텔 잔상이 떠올랐습니다.


가끔씩 이런 이유들로 옛 여행 사진들을 들춰내어 그 시절 속에서 한참이나 서성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은 묘한 슬픔의 정서를 일으키며 아련하고 또 아련하게 멜랑콜리해져서 대낮부터 와인 한잔이라도 꼭 하고픈 그런 심경이 되곤 하죠. 부서질 듯 불안정하게 흔들렸지만 행복했던 시절들.



 







용기 VS. 무모함

(feat. 절대 서울시민이란 타이틀은 놓치고 싶지 않아!)


한정된 적은 예산으로 남들과 다른 주거 형태를 선택하는 용기 또는 그 무모함에 대하여



"일과 결혼했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커리어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재산인 신사동 오래된 빌라를 팔고 은행과의 채무 관계를 정리하며 이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집을 샀습니다. 제 로망을 실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 '서울을 떠나면 주택의 질이 조금은 더 좋아지겠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조리 서울에 있잖아.'


신도시의 네모 반듯한 도로와 엄청나게 큰 쇼핑몰,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저는 그것보다 오래된 도심의 무질서한 모습이 좋고 서울이 가지고 있는 대체불가한 문화 예술적 인프라가 좋았습니다. 저는 그런 대도시의 관능성을 애정합니다.


그러니 떠나면 안 됩니다. 서울 어디든 두 발을 단단히 내딛고 있어야 합니다. 다음번 서울 시장도 반드시 제가 뽑겠다는 결연한 의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안 하지(아마도 '못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그전엔 했습니다. 아마도...,



집 근처 아차산 긴고랑계곡길에 흐드러진 봄꽃들. 지난 2월 초, 막바지 겨울에 도착한 이 낯선 동네에서 이 봄은 그나마 내게 위로를 주었다. 벚꽃도 매화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봄의 속도에 따라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나름의 인생 프로젝트에 지친 무채색의 내게 향기로운 시각적 포용을 던졌다. 




이렇게 '어떤 결단'을 내리고 나서부터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오래되고 낯선 변두리만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런 곳을 둘러보고 신사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맥락 없이 바뀌던 주변 풍경이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스스로의 결단에 의구심을 품기 일쑤였죠. 정말 괜찮은 거지?


사실 공사 기간 동안의 임시 거주처인 빛 하나 안 들어오는 지층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도, 공사를 진행해 가면서도 의구심은 완벽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지?... 정말이야???



종종 이런 벽화들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잔잔히 자극하며 내 유년의 서정을 이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오래된 외관을 더욱 초라하게 부각시키기 쉽기에 진심으로 나는 이 벽화들을 반대하는 편이다. 어차피 조금이라도 예산은 들 테니, 벽화 대신 정작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을 정비해 주면 좋겠다. 도시의 미관을 완벽하게 해치는 공중선 지중화 작업 같은 것 말이다.




이 집을 매입하던 시점(2021년 10월)은 엄청난 아파트 이슈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아파트에 살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저였는데도 당시 아파트값 폭등을 보고는 '아차' 싶어 괜스레 속이 상했습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아파트'에 입성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뒷북을 치다 부동산 아파트 가격을 보고는 이제 나는 안되는구나...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후라는 걸 알았죠. 언제나처럼 뒤늦게.


제가 할 수 있는 건 집에 대한 저의 철학을 더 공고히 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일, 제가 아파트를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탑층이 자꾸만 아른거려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니 아파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걸로 합니다. 세상 넘쳐 나는 게 아파트 이야기인데 굳이 저까지 보탤 이유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래전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제게 현실감 무장했던 누군가가 던진 말 "아파트를 팔아서 단독을 사는 거야"라던 그 말이 자꾸만 튀어 올라 신경을 거슬리게 합니다.


이런, 젠장입니다.



저렇게 사악하게 도시 미관을 해치는 공중선들 말이다. 저 낮고 두텁게 내려앉은 수십 갈래의 선들이 거미줄처럼 이 좁은 골목의 시각을 해하고 있다. 이 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얼마 전부터 지중화 작업이 한창이던데 한결 산뜻해진 도로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더라. 이 골목의 순번은 언제나 오려나...  




자~! 더 이상의 불평을 동반하는 저의 루저 코스프레(?)는 그만하고 가장 중요한 화두 하나 던집니다.


"아파트라는 획일적인 프레임을 벗어나 집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조금만 촉발시켜 보면 어떨까요?"

"당신에게 좋은 집은 어떤 건가요?"



저는 요즈음 이 화두에 대한 답을 처절하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집 한번 잘 고쳐보자! 혹시 알아? 이 낡은 집의 독특한 무언가가 부가가치를 상승시켜 프리미엄 잔뜩 받고 팔 수 있을지!!"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니 왠지 세상을 향해 통쾌한 기분마저 듭니다. 결국엔 저도 사람들이 아파트를 '돈'으로 보는 똑같은 시각으로 이 오래된 집을 보고 있으면서 말이죠.



그럼 저의 길고 길고 길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저와 이 집의 리모델링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품명 : 설교 뒤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The Vision After the Sermon
아티스트 : 폴 고갱 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
미술 사조 : 종합주의, 상징주의
1888년, 캔버스에 오일, 72.2cm x 91cm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 있는 성서의 한 장면(구약성경 창세기 32장 22~31절)을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여성들이 설교 후에 보는 종교적 환영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 화면 속에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 표현되어 있는데, 화폭 앞 기도하는 여성들은 현실의 장면이고 오른쪽 상단의 결투 장면은 환영 속 장면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고갱은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데 충실했던 인상주의와 결별을 선언하며 진정한 그만의 상징적이고 영적이며 원시적인 예술세계를 시작하게 된다. 최근에 이 작품은 '고갱의 작품 중 가장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작품', '20세기의 모든 문을 여는 열쇠'로 찬사 받고 있다. 



'하고 싶다'와 '했다' 사이를 여여히 반복하고 싶었다.


형 에서를 배신한 사기꾼의 삶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다시 태어남의 상징이 된 '야곱', 그리고 자연을 재현하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화가 자신의 감정을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상징주의의 시작과도 같은 '고갱’. 그들(야곱과 고갱)이 펼쳐낸 간곡한 욕망과 단단하고 당찬 삶을 향한 변화의 태도를 내 몸에도 빼곡히 새겨 놓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그게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겠다는 내 의지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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