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핏... 비록 이렇게 어리석고 변덕스러운 나일지라도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나가보니 한 중년 부부(?)가 골목길을 울려대던 그 목청만큼이나 큰 동작의 삿대질을 한다. 일단 상황 설명을 하고 그들을 진정시키며 차를 뺐다. 차도 비난도 정지된 순간, 후두두둑 막무가내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눈물에는 한동안 나마저도 외면해 온 서러움과 외로움의 자기 연민이 덧대져 어느새 통곡으로 변주된 채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고 고개를 드니 어느새 건물 어르신도 이 새벽에 호출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언제부터 저기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서 계셨던 걸까. 창피함과 고마움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반톤 높여 인사를 건넸다.
이 빌라 나름의 엄격한 주차룰이 있었나 보다. 비어져 있던 필로티의 몇몇 주차자리를 뒤로 하고 3개월 단기계약자인 나는 건물 뒤편 급경사진 오르막 비좁은 자리가 배정되었다.
산이 지척이라 그런가. 2월 초 여전히 날카로운 겨울의 새벽 찬바람을 느끼며 방에 들어서지만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원룸의 보일러는 요란한 그 가동소리에 비해 쉽게 따듯해지지는 않는다. 잠도 오질 않는다. 오늘 하루 벌어진 아찔한 이별과 거부하고픈 열띤 환대에 여전히 혼미할 뿐, 더 울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당장의 눈물은 소진되었나 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아니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마음이 진정되자 이젠 머릿속에서 난리가 난다. 급기야 실현가능성 없을 허황된 플랜 B마저 보태진 채 여기까지 끌고 온 나를 그리고 애써 긍정해 온 내 선택을 향한 진지한 의심이 또다시 꿈틀거린다. 그렇게 침대에 꼼짝도 않고 누워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온갖 걱정으로 몇 배속이나 늘어진 저속 촬영 같은 시간이 겨우 흘러 마침내 아침은 왔다. 하지만 아직 부동산 사장님께 연락하기에는 이른 시간,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치겠다 싶어 데스크탑을 연결하고 얼마 전 작업의뢰를 받은 클라이언트에게 거절 메일을 보냈다. 욕심이 난다고 지금 상황에서 그 큰 프로젝트를 덜컥 맡을 수는 없다. 어젯밤 한기에 자신 없었던 샤워도 했다. 세상에!! 욕실이 이렇게나 춥다니. 당장 외면하고픈 현실만 한껏 더 비참하게 부각됐다.
'가만... 아침인데 왜 이렇게 어두운 거지? 날이 흐린가?'
3개월만 살면 될 거라 생각했기에 리모델링 현장에서 가깝고 비교적 저렴한 데다 주차까지 되는, 심지어 넓기까지 한 이 원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고시원을 제외하고 단기로 렌탈하는 곳도 없었으니 오히려 운이 좋다며 기뻐했었다. 반지하도 아니고 지층이니 1층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고. 물론... 정면에서 볼 때만 그랬다. 왜 나는 이 집이 급경사에 놓여졌다는 것을 보고도 인식하진 못했을까. 창문의 한쪽은 필로티 주차장 그리고 한쪽은 천장이 렉산으로 꽉 막힌 1미터 간격도 안 되는 흙벽이었다. 빛뿐만이 아니라 바람조차 통할수가 없는 구조. 바람이 분다면 주차장에서 자동차 매연이나 들이닥치겠지. 환장하겠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사장님, 저 이 집 그냥 다시 팔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