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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05. 2023

떠나간 여행길에서 머무를 집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여행'과 '집' 그리고 '떠나는 것'과 '머무르는 것'



"이런 집은 어떤가요?

.... 비록 예술가는 못될지라도" 



예술가의 집은 그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자 예술 작품이 된다.

비록 예술가는 못될지라도, 나도 그들처럼 집과 관계맺기를 해본다.











누군가 말했다. 1970년대 불란서 주택이라고.

불란서 주택??!! 이 집이 프랑스풍인가? 잘 모르겠는데... 그런가?



지금은 이렇게나 낯선 단어의 내막은 이러했다. 불란서 주택은 1970년대에 지어진 박공지붕을 가진 한국형 2층 양옥집을 일컫는 별칭이었다고 한다. 나름 그 시절 부유한 도시 라이프의 상징이었다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정봉이네 집이 바로 그거였다.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표현이다. 불란서 주택... 마음에 든다. 뭔가 이 집의 고유한 히스토리가 하나 더 깃들여져 특별해진 기분이다. 뿌리를 찾았다고 하면 너무 나간 거긴 하지만 앞서 프랑스를 언급하기도 했으니 아귀가 딱! 딱! 너무 들어맞잖아.


당시 건설업자들의 브랜드 전략으로 별 의미 없이 프랑스와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한마디로 근본 없이 이름 지어진 허울뿐인 불란서(佛蘭西 : 프랑스의 한자 표기)라는 용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꿈꾸는 내게 기이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나 또한 별다른 근본이 없으니... 닮았네. 유머러스한 키치 같다. 그러고 보니 연남동이고 성수동이고 요즘 감각 있다 싶은 단독주택 리모델링 카페들이 한결같이 이런 삼각형의 뾰족 지붕, 발코니와 콘크리트 난간 등 나의 집과 비슷한 형태가 많다. 우리 모두 불란서 주택이었어! 


아차산 자락, 자그마한 미니어처 같은 나의 불란서 주택. 이제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 과거의 영광위에 화사한 현대적 미감을 덧대볼까?






꽤 오래전, 베네치아의 그 수많은 수로를 따라 엉켜 있는 골목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었다. 이 수많은 길로 동양의 진귀한 보석과 화려한 비단, 금보다도 귀했던 향신료와 물감 안료 같은 이국적인 보물들이 넘치게 흘러들어왔다. 르네상스 베네치아 화파의 선명한 빛과 색채표현도 당시 비싼 물감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던 베네치아의 지리적 유리함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지중해 도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길과 육지길을 통해 어쩌면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극동의 아시아까지 여러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베네치아에서는 지도도 무용했다. 당시는 구글맵이 아닌 종이지도가 더 보편적인 시절이었는데 빼곡한 거미줄 같은 지도를 뚫어져라 탐색한다 해도 한참을 돌도 돌아 이내 같은 장소에 다다르곤 했으니 말이다. 그 도시에 혼합된 문명만큼이나 다양한 나라에서 여행온 8월 휴가철의 넘치게 바글거리던 관광객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미로에 갇혀, 결국 예매한 기차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지중해 도시에서의 당혹스러웠던 기억. 


과거 해상 제국의 영광을 느끼며 낭만스레 나폴대던 길 위에서 순식간 소매치기라도 당한 듯 억울한 마음을 추슬러 투덜투덜 숙소로 되돌아오던 실망의 순간마저 이 집 어딘가에 박제하고픈 과욕을 품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힘을 빼는 법을 좀처럼 모른다.




내일로 기차를 다시 예매하고 또다시 베네치아를 걸었다. 그리고 해가 뉘엿해질 무렵 이 집 앞에 닿았다. 지금은 아무 소리도 아무 내음도 없는 이 사진 속엔 한 가족이 준비하는 저녁 식탁이 있었다. 지글지글 달그닥달그닥하는 수런거림 속에 필요 이상의 매력적인 몸매로 내 눈을 미혹하던 베네치안 아빠와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는 엄마의 외침으로 저 빛바랜 초록문으로 숨가쁘게 사라졌다. 그 때 그 모든 상황에 얼마나 질투가 나던지.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나도 저기 있고 싶어."  


저 부자(父子)의 아내와 엄마가 되어 볕좋은 날이면 온화한 미풍에 가족의 빨래를 널고, 해질 무렵이면 집 앞 수로에 묶어 놓은 배를 저어 저녁장을 보러 나가고 싶었다. 아르카디아 같은 목가적 이상향 앞에 선 느낌은 아늑하고 감미로웠지만 결국엔 여행지에서의 외로운 감정만 나지막이 남겨질 뿐이었다. 나의 집을 만드는 순간이 오니 그때의 강렬했던 '집'이라는 인상이 떠올라 기어코 오래전 이 여행 사진을 끄집어 내본다. 



'여행'과 '집' 그리고 '떠나는 것'과 '머무르는 것'

떠나간 여행에서 머무를 집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는 필연적인 역설이 던지는 묘한 흥분감에 어김없이 사로잡혔다.




과거 문화의 용광로가 되었던 지중해처럼 '나'라는 사람이 지닌 수많은 자아와 지난 이국의 여행길에서 체화한 유무형의 감각을 섞어 이 '집'이라는 용광로에 녹여내는 것! 


이런 내 모습에 어떤 이들은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라며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유럽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허영심 가득한 여자라고 한심해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나를 표현하며 살고 싶다는 바램이, 익숙한 이곳과는 다른 생경한 문화에 깊이 열광한다는 호기심이 그렇게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다소 유쾌하지 못한 넌센스지만, 요즘 흔한 성찰의 말로 나부터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려 노력하는 수밖에 별도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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