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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Sep 26. 2020

시(詩)라는 열매

[시 짓기] 소원을 오늘의 시로 수확했습니다



()라는 열매    


나의 얕은 뿌리와 앙상한 가지에도

시라는 열매가 맺히는지   

  

고운 빛깔에 은은한 향을 품은

유자 같은 열매가 영그는지   

  

손을 뻗으면 닿을 높이에

시가 매달려 있는지     

 

그러면 참 좋겠다는 소원을

오늘의 시로 수확했습니다     




[단상]

“시는 열매 맺는 자리가 각각 다른 듯하다. (...) 서로 다른 높이에 서로 다른 빛깔과 굵기로 매달린 유자처럼 한 편 한 편의 시는 있는 것 같다.” (p.15)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숲, 2019)에 실린 글입니다. 읽으면서 과연 시라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가 내게도 있는지, 그 열매가 빛깔과 굵기는 알맞은지, 내 손에 닿을 높이에 매달려 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유자 같이 향기로운 시를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면 얼마나 기쁠까도 상상해보았습니다.      


“다만 유자와도 같은 시가 있어 그 시들이 바구니에 담겨지더라도 개중에 한두 개의 시는 나무의 가지 제일 끝에 매달려 거둬들여지지 않고 남겨져도 좋겠다. 그러면 그 남겨진 시는 햇살과 바람의 일부가 되거나, 새의 일부가 되거나, 별과 허공의 일부가 되거나, 벌레의 일부가 되거나, 툭 떨어지거나, 그곳에 시가 매달려 있었다는 기억이 사라질 때에 함께 사라질 것이다.” (p.17)   

  

시인의 마음은 역시 너그럽습니다. 가지 제일 끝에 달린 열매는 자연에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합니다. 저는 오늘의 시 수확에 급급해 시인처럼 시라는 열매를 가지 끝에 남겨둘 마음의 여유는 없네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을 배우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문태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마음의숲, 2019)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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