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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07. 2020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시 읽기] 에드윈 마크햄 '원'




              에드윈 마크햄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 류시화 옮김 <시로 납치하다> (더숲, 2018) 중에서    




[단상]

‘나의 원은 지름이 얼마나 될까?’ ‘그 안으로 과연 몇 사람이나 초대할 수 있을까?’ ‘내가 부당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원 밖으로 밀어낸 사람은 없었나?’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이런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감상을 덧붙였다. “지금 우리는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서 자신의 주장과 다르거나 자기 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동그라미 밖으로 밀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다. 계속 밀어내면 원은 점점 작아진다. 더 많이 초대하고 끌어들일수록 원은 넓어진다.” (p.50)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비슷한 시를 지었다. 같은 책에 인용된 시 <넓어지는 원>의 일부다.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넓어지는 원> 중에서


어떤 원을 그리며 살아갈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점점 안으로 작아져 ‘나’ 하나로 수렴하는 원보다는, 끝내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지라도 ‘세상’을 향해 점점 반경을 넓히는 원을 그리며 살고 싶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더숲, 2018)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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