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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13. 2020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시 읽기] 이상국 '있는 힘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 2005)     




[단상]

해 질 녘 물가의 왜가리가 길고 우아한 목을 빼고 물속을 들여다본다. 다분히 낭만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곧 생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현장이란 걸 포착한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왜가리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리를 처박는다. 얼마나 오래 숨을 죽이며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세상사 어느 하나 수월한 일이 없다. 끼니를 잇기에도 사정이 여의치 않고 벅찬 날들이 있다. 오죽하면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TV 프로그램이 하나 만들어질까. 멀리서 보면 낭만인 일도 가만 들여다보면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애쓴 흔적이다. 그러니, 당신도 나도 오늘 하루를 ‘있는 힘을 다해’ 사느라 수고했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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