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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15. 2020

빈 우듬지에 시 한 구절을
걸어놓으리

[시 읽기] 오세영 '저울'



저울


                   오세영    

 

정원의 나뭇가지 끝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던 홍시 하나가

이 아침

툭 떨어진다.

긴장한 수평선 한쪽이 한순간 풀어지며

출렁,

푸른 물을 쏟아낼 것만 같다.     


오늘부터는 그 빈 우듬지에 내 시 한 구절을

걸어놓으리.     


- 시집 『가을 빗소리』 (천년의시작, 2016)     




[단상]

나뭇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홍시 하나. 시인에겐 그 긴장된 상태가 곧 풍경이라는 저울의 수평 상태였나 보다. 홍시가 툭 떨어지는 순간 나뭇가지는 출렁했고, 기울어진 저울에 시인의 마음도 철렁했다. 시인은 그 빈 우듬지에 얼른 시 한 구절을 걸어놓고 균형을 맞춰본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그곳에 말을 채워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시(詩)인지도 모르겠다. 한순간 긴장을 놓고 풀어져 위태롭게 출렁거리는 우리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시(詩)다. 그러고 보니 시를 짓고 시를 읽는다는 것은 우주 만물의 수평을 유지하는 일 같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정원을 상상해본다. 홍시가 하나둘 떨어지는 이맘때면 시인의 감나무엔 시가 주렁주렁 열려있을까? 수평을 맞춘 저울처럼 균형 잡힌 삶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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