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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Dec 11. 2020

아가야, 커다랗게 너의 몸을 짜주마

[시 읽기] 송찬호 '뜨개질'



뜨개질


                      송찬호     


아가야우선 식탁을 짜고

둥글고 하얀 접시를 짜고

멀리서 떠도는 너희 아버지의

모자와 모자 위의 구름을 짜고

그리고 아버지의 닳고 닳은 구두를 짜고    

 

아가야네게는 무엇을 짜줄까

그래네가 갖고 싶은 것

그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커다랗게 너의 몸을 짜주마     


-시집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사, 2000)     




[단상]

어릴 적 엄마가 뜨개실로 짜준 스웨터와 원피스가 생각난다. 나는 털실 뭉치가 옷으로 변해가는 게 마법같이 신기해 엄마 곁에서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그때 엄마는 뭐든 말만 하면 뜨개실로 다 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엔 모자를 짜 달라고 할까, 아니면 장갑? 아이의 상상은 털실로 짠 ‘구두’와 ‘식탁’, ‘접시’를 넘어 ‘구름’까지 뻗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뜨개질하는 중간중간 나를 불러내어 내 몸에 털실 옷을 대보셨다. 어깨의 폭을 대보고 팔 길이, 무릎의 높이를 재며 뜨개질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완성된 뜨개옷은 입어보면 항상 나보다 한 치수 컸다. 몸에 예쁘게 딱 맞지 않아 나는 어린 마음에 얼마간 실망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엄마는 그사이에도 자랄 아이의 몸을 생각해서,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입히고 싶은 마음에 내 몸보다 크게 옷을 짜셨을 테다. 어쩌면 이 시처럼 '네가 갖고 싶은 것 / 그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커다랗게’ 나의 몸을 짜주신 것일지도.     


털실로 짠 모든 것들은 포근하다. 시인의 시도 한 치수 컸던 엄마의 털실 원피스처럼 품이 넉넉하고 아늑하다.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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