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혜심 스님의 선시
못가에 홀로 앉아
물 밑의 그대를 우연히 만나
묵묵히 웃음으로 서로 바라볼 뿐
그대를 안다고 말하지 않네.
- 혜심 스님(1178-1234)의 선시
[출처] 문태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 숲, 2019) 중에서
[단상]
고려의 진각 혜심 스님(1178-1234)이 쓴 선시를 문태준 시인이 옮긴 것이다. 연못가에 앉은 스님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도 마치 타인을 만난 듯 ‘그대’라고 칭한다. 그리고 말없이 웃으며 바라만 볼 뿐 ‘그대를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아를 초월한 스님의 높은 경지를 짐작하게 하는 시구다.
수전 손택은 시몬 베유의 철학서 <중력과 은총>을 인용하며 ‘자의식은 영혼에 짐을 지우는 중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자의식을 초월하는 것을 은총, 즉 정신적 가벼움이라고 정의했다. 자의식을 내려놓는 훈련이 곧 마음 수양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을 마주 보게 되었을 때 묵묵히 웃음으로 회답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바로 평정심이라고 말한다. 이 시처럼, 스님처럼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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