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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n 29. 2021

침묵을 깨는 약속

영화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내가 죽도록 증오했던 대상과 같은 존재라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가혹한 진실이 드러나고도 그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사랑이란 얼마나 거대한 형태의 사랑이기에 그럼에도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Incendies)>은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한 것이다. (희곡은 <화염>(지만지드라마, 2019)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970~1990년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작품에선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 시대 속에 내던져진 한 인물의 비극적인 삶과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왈 마르완. 사랑으로 낳은 아이는 전쟁 중에 잃어버리고, 공포 속에서 낳은 아이들은 침묵으로 키워야 했던, 삶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검게 그을려버린 사랑의 주인공.  

   



이야기는 나왈이 죽고 그녀의 유언장이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된다. 나왈은 딸 잔느에게는 아버지에게 전달할 편지 한 통을, 아들 시몽에겐 형에게 전달할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남겼다. 그리고 그 편지들이 수신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침묵은 깨지고 마침내 내 무덤에 이름을 새긴 묘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어느 날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 종잡을 수 없는 유언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들은 그녀의 과거를 추적한다.       



잔느가 먼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간다. 오랜 전쟁으로 폐허 속에서 재건된 도시는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기독교/이슬람, 정부군/반군, 민족주의자/난민 사이의 뿌리 깊은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론 수학가인 그녀는 난해한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듯 엄마를 둘러싼 진실을 하나씩 밝혀나간다. 그녀가 속한 가족이라는 다각형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꼭짓점, 즉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과 무한대(∞) 사이에, 아빠가 살아 있다는’(<화염>, p.33) 가설이 가능하다. 영화는 과거 나왈이 아들을 찾아 헤맸던 행적에 현재 잔느의 여정을 겹쳐놓으며, 나왈이 겪어야 했던 충격적인 사건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 배워.
생각하는 걸 배워라, 나왈. (<화염>, p.49)


나왈은 이슬람 난민 와합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와합은 죽임을 당했고 아이는 기독교 가문의 수치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진다. 발뒤꿈치에 점 세 개의 표지가 새겨진 채. (희곡에서는 ‘피에로의 빨간 코’가 표지다.) 나지라 할머니는 나왈에게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이 분노의 끈을 끊기 위해 마을을 떠나 읽고, 쓰고, 생각하는 걸 배우라고 말한다. 나왈은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킨다. 이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차례. 하지만 아들이 맡겨졌던 고아원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눈앞에서 난민을 태운 버스가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불태워지는 것을 목격한 나왈은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하는 데 동참한다. 감옥에 투옥된 그녀는 7번 감방의 72번 수감자로 ‘노래하는 여인’이라는 전설이 되지만, 그녀를 굴복시키려는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에게 성폭행을 당해 감옥에서 쌍둥이를 출산한다. 이 아이들이 사르완과 자난, 곧 시몽과 잔느다.      


잔인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이제 형을 찾아 나서는 임무는 시몽에게 맡겨진다. 시몽은 남부지역 레지스탕스 지도자 샴세딘을 만나 자신의 형의 이름이 니하드라는 것을, 현재는 니하드 하르마니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적인 진실, 말문이 턱 막히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맞닥뜨린다.      



1 더하기 1이, 1이 될 수 있을까?


시몽은 잔느에게 묻는다. 수학에서 1 더하기 1은 2다. 하지만 시작 수에 상관없이 일정 수식을 반복하면 항상 1에 도달한다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있다. 콜라츠 추측. 시몽의 질문은 무슨 뜻일까? 시몽과 잔느의 아버지와 형은 두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저격수 니하드가 이름을 바꿔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둘을 1로 수렴시킨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보복에 보복을 반복하는 전쟁 중에 발생한 것이다. 실로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평생을 찾아 헤맨 아들을 만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나왈의 심정은 어땠을까?    


  

영화의 엔딩 장면


두 통의 편지는 한 명의 수신인에게 전해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사랑하겠다던 나왈의 약속은 지켜진다. 침묵은 깨졌고 분노의 흐름은 끊어졌으며 나왈의 묘지에는 비석이 세워진다. 사랑과 증오의 대상이 하나일 수 있다는 건, 지금도 어디선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대립하고 있는 이들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일지 모른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객을 노려보는 강렬한 눈빛의 아이와 영화의 엔딩에서 나왈의 묘비 앞에 묵념하는 니하드가 한 사람이듯이 말이다.


반전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 OST가 흐르는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


영화 <그을린 사랑>은 전쟁의 화마가 남긴 깊고 어두운 내상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관객에게 쉽게 회복할 수 없는 감정적인 여파를 남긴다.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 포스터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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