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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13. 2021

마음은 죄가 없다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00의 마음’이라고 하면, 마치 마음에 주체가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문자 그대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음은 제 혼자서 부풀었다 꺼지기도 하고 미련하게 어떤 기억을 붙들고 늘어지다가 한순간 차갑게 돌아서서 끝을 맺기도 한다. 마음이 아예 문을 닫아버리고 나 자신조차 들이지 않을 때는 이 변덕스러움을 견디느니 차라리 마음이 없다면 사는 게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의 마음에 관해서도 이럴진대 하물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보려는 시도는 얼마나 무모한가.     




<경애의 마음>(창비, 2018)의 경애도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상처받은 마음은 쉬이 회복되지 않고 그녀의 존재 위에 ‘적체(p.31)’되어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만 늘리고 있다. 학창 시절에 경애는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친구들과 소중한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다. 이후에 밝혀진 사건의 전말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살아남은 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회사에서는 삭발까지 한 파업의 주동자이면서 동시에 파업을 망친 장본인이라는 이중 비난을 받으며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도무지 ‘마음을 잃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날들’(p.30)이다. 


게다가 사랑은 또 얼마나 표류 중인지.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p.60)이라는 경애는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p.151)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언제쯤 그녀는 ‘봉인’(p.161)된 마음을 풀고 어딘가 안전한 곳에, 더이상 상처받지 않을 곳에 가닿을 수 있을까? 과연 이 세상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p.139)을 기대해도 될까?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한번 믿어보는 용기를 가져도 되는 걸까?   

   

상수는 상수대로 고립되어 있다. 억압적인 아버지와 폭력적인 형 사이에서 어린 마음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이 되고 만다”(p.123)가 상수가 자라면서 얻은 아픈 교훈이다. 어머니와 친구의 잇따른 죽음으로 그의 삶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 채 부유하고, 그래서 그의 마음은 곧잘 영화와 소설로 도피한다.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상수는 반대로 온라인상에서 타인의 슬픔을 달래주는 존재가 되었다. ‘언니’로의 존재 전이까지 감수하면서…. 


언뜻 사회 부적응자, 혹은 고문관이 떠오르는 상수의 모습은 한편으론 빠릿빠릿함과 유도리를 요구하는 경쟁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상수는 서툴지만 ‘고유한 윤리’(p.158)와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p.158)이고 나약함과 패기를 오락가락하면서 생긴 ‘사이의 감각’(p.159)도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보겠다는 무모함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p.208)이라는 각오를 품고.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p.27)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부과된 중력을 각자가 밀어내며 공중에 얼마간 머물렀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에게 부과된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며 그네처럼 오르내리되 하강에 실망하지 않고 다시 힘찬 발 구르기로 상승을 기약하는 것. 그렇기에 타인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네를 잡아주거나 밀어주기보단 옆에서 나란히 자신의 그네를 마음을 다해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안녕을 빌면서.  




소설 <경애의 마음>은 경애와 상수의 마음이 각자의 바닥을 딛고 올라 나란히 그네를 타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과거 은총이라는 친구를 공유했고 잃었으며, 반도미싱이라는 회사에서의 베트남 파견 근무를 함께 했고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교류했던 두 사람. 너무 많은 우연이 겹쳐 인연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p.352)다. 그래서 이들이 몇 번의 계절을 견디고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뜻’(p.263)의 경애와 ‘늘 변치 않는’(p.290) 상수의 마음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언죄다’ 페이지의 최종 매뉴얼을 기억하며.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p.176)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사진 출처: 책표지, 안소현 작가의 <Pink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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