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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pr 10. 2022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

최은영의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


'언제나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여자애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애는 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여자애를 가로막고 있는 바다를 떠올렸다. 이 소설은 그 바다의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_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작가노트] 중에서


최은영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 소설의 발상이 ‘쇼코’에게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는 화자인 소유의 기억에 ‘분명한 자국’(p.15)을 남긴 쇼코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동시에 소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유와 쇼코는 국적은 한국과 일본으로 다르지만 놀랄 만치 닮아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환경도, 아버지가 부재한 가족 구성도, 할아버지와의 애증의 관계까지도 두 사람은 거울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서로의 모습을 비추되 좌우가 바뀌는 거울처럼 처한 상황에 따라 반대로 보였을 뿐.      




소설에서 소유와 쇼코는 열일곱, 스물셋, 그리고 서른의 나이에 단 며칠을 함께 보냈다. 살면서 세 번 만난 사이이다. 어떻게 보면 서로의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p.25)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교류에도 강한 인상과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p.24)는 소유의 말처럼 말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도 현재에 이를 수 있었던 매개는 편지와 할아버지라는 존재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일본에서 온 견학생으로 쇼코를 처음 만났을 때, 소유는 쇼코를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p.14)를 짓는 아이라고 느꼈다. 그 미소가 소유에게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p.14)처럼 보였던 이유는, 별다른 꿈이나 포부가 없었던 그녀와 달리 ‘언젠가는’(p.9)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쇼코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 가서 살 거야.”(p.9), “언젠가는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타투를 할 거야.”(p.10) 쇼코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부끄러워할 때 소유는 혼자 웃었다. 당시에 소유에게 쇼코는 이질적이지만 호감이 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p.15)라고 쇼코가 무심코 전한 말이 소유의 장래 희망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한동안 소유와 소유의 할아버지에게 각각 편지를 썼다. 소유에게 도착한 영어로 된 편지엔 언제나 부정적인 내용이 쓰여 있었고, 할아버지 앞으로 쓴 일본어 편지엔 긍정적인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긴 건, 이러한 쇼코의 내적 분열 증세가 심각한 병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은 뒤바뀌어 있었다. 쇼코는 할아버지의 지병과 자신이 앓는 우울증 때문에 고향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반면에 소유는 예전 쇼코의 바람처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머물렀으며 뉴욕에도 여행을 다녀온 상태였다. 현실에 안주한 쇼코를 보며 소유는 ‘이상한 우월감’(p.26)을 느끼고, 쇼코가 예의 ‘그 예의바른 웃음’(p.26)을 지어 보이자 이번엔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p.26)라며 혐오의 기색을 내비친다. 그때 소유는 자신은 쇼코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p.31) 믿었다. 영화감독의 꿈이 ‘죄’(p.33)가 될 줄은, 자신의 삶을 기만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다시 만난 건, 두 사람 모두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 남았을 때다. 이번엔 상실감과 우울증을 어느 정도 극복한 쇼코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소유의 할아버지가 쇼코에게 보낸 편지가 두 사람의 화해에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 시기 소유는 재능도 아니고 꿈도 아닌 영화감독의 길을 접고 이제 막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은 때였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소유의 원룸까지 찾아와 전한 진심 어린 응원이 역설적으로 소유의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소유는 쇼코의 미소를 보며 예전에 처음 보았을 때처럼 ‘서늘함’(p.64)을 느낀다. 이 서늘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p.9)난 두 사람이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p.9)인 해변에 서 있는 것 같아서였을까.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p.9)이 서늘하게 느껴졌던 걸까.     


어쩌면 그 서늘함은 두 사람의 삶이 시차는 있었지만 제각기 아픔과 고독의 시기를 거쳐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귀착되었다는 냉철한 인식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소유가 바라본 ‘쇼코의 미소’는 사실 소유 자신의 마음 상태를 비춘 거울이었다. 소유는 거기에서 이상적인 자아와 혐오스러운 자아를 모두 발견했다. 삶을 향한 욕망과 그 욕망의 실현 불가능성, 즉 자신의 한계를 모두 보았다. 자기 자신의 민낯을 응시하는 건 언제나 서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조금은 따뜻한 결말로 기억되는 이유는 두 사람이 어느 지점에서는 언어의 장벽이 무색하게 소통하고 공감했으며 서로에게 ‘위안받았다는 사실’(p.59)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현해탄을 건넜을 때, 이들의 인연은 이어졌다. 나와 너 사이를 가로지르는 심연을 건너 상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용기가 이해를 향한 시작일 것이다. 소유와 쇼코의 이후 이야기를 독자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둘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결코 이르지 못했겠지만, 어떤 꿈은 잃고 어떤 꿈은 이뤘으리라 짐작해본다. 쇼코가 애벌레 모양의 타투를 진짜로 새기고 나타났듯이 말이다. 그 작은 성취에 위안을 얻는 독자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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