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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퍼스트 카우> 다음 이야기

by 이연미
본 글은 영화 <퍼스트 카우>(켈리 라이카트 감독, 2019)의 다음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상상해서 쓴 픽션입니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그리고 여행객에게는 환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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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지배인 : 킹 루


기회의 땅 샌프란시스코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희 『Night Owl Hotel』은 3층짜리 고택을 개조한 아담한 사이즈의 호텔로 안락한 객실과 훌륭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미국 최초의 B&B(Bed&Breakfast)입니다. 저는 이 호텔의 지배인이자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킹 루이고, 제 옆에 있는 이 친구는 저희 호텔의 자랑인 요리사 쿠키입니다. (쿠키: 수줍게 “Hello.”) 아, 저희 벨보이 토마스는 이미 만나보셨겠군요. 호텔 안내를 해드리는 동안 여러분의 짐은 토마스가 객실로 안전히 옮겨드릴 겁니다. 그에게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사람에게 조금도 해를 가할 줄 모르는 무척 정이 많은 아이죠. 저희 두 사람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요. 팩터 대장으로부터... (쿠키: “흠흠”)


아, 얘기가 옆길로 샜네요. 호텔 소개를 이어가겠습니다. 소문을 들어 익히 아시겠지만, 저희 호텔의 홈메이드 아침은 어떤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매일 아침 7시~9시 사이에 1층 베이커리 카페로 내려오시면 갓 구운 빵과 홍차를 드실 수 있습니다. 물론 홍차에 넣을 크림도요. 아침이 준비되면 제가 객실마다 돌면서 올빼미(Night Owl) 소리로 알려드릴 겁니다. 하하, 우스갯소리입니다.

쿠키, 아침 메뉴를 소개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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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베이커 : 쿠키


안녕하세요, 베이커 쿠키입니다.

아침으로 제공되는 버터밀크 비스킷은 갓 튀겨낸 빵에 꿀을 바르고 그 위에 시나몬 가루를 약간 뿌려줍니다. 시나몬이 맛과 풍미를 더 좋게 하거든요. (킹 루: “누구는 ‘런던의 맛’이라고 감탄하더군요. 환상적인 맛의 비밀은 고대 중국의 비법 재료랍니다.”) 곁들이는 차는 차이니즈 홍차로 멀리 광둥에서 킹 루가 비버 오일과 맞바꿔온 귀한 차입니다. 아주 오묘한 맛이죠. 크림은 저희 축사에서 키우는 착한 암소에게서 매일 새벽 얻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말이죠. (킹 루: “혈통이 저보다 좋은 로열 카우입니다. 토마스와 함께 저희 일행에 합류했죠.”) 원래는 남편과 송아지도 함께였는데 긴 여행길에서 그만... (킹 루: “쿠키, 그 얘긴 넘어갈까?”) 아, 그러지.


티타임엔 블루베리가 들어간 클라푸티를 굽습니다. 계절에 따라 라즈베리나 살구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저희 농장에서 킹 루가 직접 생산한 아몬드와 호두도 들어가서 맛이 더욱 풍부합니다. 아 네. 저희는 뒷마당에 축사와 작은 농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베이커리 소개는 여기까지고요. 루, 뭐 빠진 게 있나? (킹 루: “클라푸티는 은화 20개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정 판매라 늦게 오시면 안타깝게도 맛보시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First come, First served 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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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객실을 둘러볼까요? 방이 보시기에 어떤가요? 파리에서 유행하는 카나리 옐로우터키 레드로 인테리어를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최신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죠, 하하.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의 들꽃은 시들기 전에 교체하고 있습니다. 객실이 삭막하지 않고 집처럼, 어머니 자연처럼 편안했으면 하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엔 규모가 큰 호텔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나그네도 편하게 쉬었다 갈 곳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해변에 객실 몇 개를 갖춘 B&B가 그래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B&B는 여행에 지친 누구나, 인종 신분에 상관없이, 인디언, 유대인, 중국인, 아프리카인, 러시아인 모두 환대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가끔 도망자도 숨겨주고 말이죠, 하하. 제 생각인데 지금은 이곳의 금광과 비버 산업이 호황이지만, 여행자가 있는 한 이곳의 관광업이야말로 영원할 것입니다. 여기는 기회가 많고 아직도 새로워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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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벨보이 : 토마스


아무쪼록 저희 『Night Owl Hotel』에 머무시는 동안 긴 여행에 지친 몸을 충전하시고 저 킹 루와 쿠키, 그리고 사랑스러운 토마스에게서 진한 우정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럼요, 우정이죠. 저희는 단지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닙니다. 쿠키와 저는 나중에 죽으면 한곳에 나란히 묻어달라고 토마스에게 부탁할 정도니까요. 얘기가 또 샜네요. 아무튼 고객도 저희에겐 가족이고 친구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참, 혹시 제빵사(Baker)와 거지(Beggar)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둘 다 빵이 고프지요. 어떻게, 갓 구운 따뜻한 빵부터 하나 맛보시겠습니까?



*윌리엄 블레이크 ‘지옥의 격언’ 인용


퍼스트 카우 포스터.jpg 영화 <퍼스트 카우> 포스터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2021)는 나란히 누워있는 두 구의 해골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관객은 두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에 풀숲에 누운 두 사람을 보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 놀랍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처음의 유골이 정말 이들의 것일까?


도망가는 쿠키와 킹 루의 뒤를 쫓은 이가 소를 돌보던 소년(토마스)이었던 걸 생각하면 아무리 총을 들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약한 소년이 과연 이 둘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떠오른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도 정당한 자기 몫의 비스킷을 먹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는 아이인데 말이다. 어쩐지 토마스도 쿠키와 킹 루처럼 주류 백인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처럼 느껴졌고 친밀한 우정에 목말라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해봤다. 킹 루의 설득에 감화된 토마스(이들의 비스킷이 너무나 맛보고 싶었던 아이)가 소까지 데리고 일행에 합류한다는 이야기.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작은 호텔과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호텔의 영업과 홍보를 담당하는 지배인엔 킹 루, 아침으로 제공될 빵과 차를 준비하는 요리사엔 쿠키, 그리고 호텔 벨보이엔 토마스가 적역이었다.


이들이라면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나그네를 따뜻하게 환대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영화에 인용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 “그리고 여행객에게는 환대를.”이라는 한 줄을 더해 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미국 최초의 B&B(Bed&Breakfast) 『Night Owl Hotel』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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