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감상문

[픽션]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열린책들, 2021)을 읽고

by 이연미
본 독후감은 카렐 차페크의 소설 <평범한 인생>을 읽은 감상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한 픽션입니다.


시니컬한 나 : 그래, 오늘 공연의 막이 내렸군. 자넨, 어떻게 보았나?


낙천적인 나 : 놀라워!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


시니컬한 나 : 혼란스럽지 않나? 난 어안이 벙벙하더군.


낙천적인 나 : 처음엔 핀 조명을 받은 피아니스트가 잔잔하고 목가적인 곡을 연주했지. 기-승-전-결이 있는, 그 자체로 완결된 곡이었어.


시니컬한 나 : 단조롭고 지극히 평범하더군.


낙천적인 나 : 평범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충만했지. 일상성과 평범함을 찬미하는 그 자세가 감동적이지 않던가? 내겐 모든 책임을 완수한 연주자의 행복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어.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p.19)




시니컬한 나 : 모든 게 질서 정연하고 단일하도록 조작되어 있다는 의심이 들더군.


낙천적인 나 : 그래? 난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지 뭐야.


시니컬한 나 : 아내를 향한 사랑의 찬가, 그 모순된 부분을 듣고도 그랬단 말인가? 순진한 사람 같으니라고. 아내와 나 두 사람만이 ‘우리’(p.109)라더니 이내 ‘우리’가 ‘나’로 바뀌지 않던가, ‘틈’(p.116) 같은 게 생겼다면서.


낙천적인 나 : 그랬군. 난 그조차도 평범함의 일면이라고 여기고 넘어갔었지. 아무튼 그 뒤의 갑작스러운 바이올린의 출현엔 깜짝 놀랐네. 무대를 휘젓는 카리스마가 엄청나더군. 힘찬 변주였지.


시니컬한 나 : 곡을 장악하려는 억척스러운 면모가 있더군.


낙천적인 나 : 이어지는 플룻의 단조곡은 또 얼마나 애절하던가.


시니컬한 나 : 우울했어.


낙천적인 나 : 이때까지만 해도 난 3개의 악기로 편성된 3중주인 줄 알았다네. 세 개의 상이한 악기가 대립하면서도 그래도 조화롭게 하나의 곡을 완성해가고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악기가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시적인 오보에, 낭만적인 첼로, 영웅적인 큰북까지...


시니컬한 나 : 대체 얼마나 많은 악기가 출현한 건가. “넷, 다섯, 여덟?”(p.212)


낙천적인 나 : 단편적이고 독자적인 음색을 지닌 이름 모를 악기들도 있었지.


시니컬한 나 : 불협화음 같았어. 온갖 유형의 악기들이 다 모여들어서.




엉뚱한 나 : (머리를 옆으로 돌린 채) 그런데 무대 한구석에 ‘거지’처럼 쪼그리고 있던,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그 악기는 뭐야? “너는 대체 누구지?”(p.11)라고 물어볼 뻔했어.


시니컬한 나 : 너는 지금까지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게야?


완벽주의인 나 :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대기실에서 준비 중이던 악기들이 훨씬 더 많았다더군. 전혀 다른 연주의 가능성들이 있었던 거지.


시니컬한 나 : 아이코, 또 다른 나가 등장했군.


낙천적인 나 : 아, 결국은 무수히 많은 악기들의 집합인 거대한 오케스트라였던 거군. ‘있을 수 있었던’(p.217) 연주까지 상상해 보면 실로 ‘아찔한 느낌’(p.223)이네.


친절한 나 : 객석에 연주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조부모, 일찍 죽은 형, 태어나지 않은 형제들이 보이더군. 무수한 타인들까지 초대하다니 이렇게 관대할 수가.


진지한 나 : ‘개개인은 무한대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집합’(p.237)이라고 보면, 연주자와 관객이 모두 ‘형제’(p.230)가 되어 하나의 곡을 연주한 거야.


낙천적인 나 : 마치 ‘커다란 잔치’ 같군. 이런 ‘향연’(p.227)이 펼쳐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


시니컬한 나 : 대체 나는 몇 명의 나와 감상을 나누고 있는 거야?


낙천적인 나 : 그건 지금 중요치 않아.


아티스트인 나 : 막이 내리고 난 기립박수를 쳤지. 나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연주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우리’의 무대를 완성한다는 데 감탄하면서.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p.82)


시니컬한 나 :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p.240)이니, 과연 ‘평범한 인생’이로군.


낙천적인 나 : “평범한 기차라고 무한을 향해 달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p.241)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이렇게 무한하게 확장된 사고로 잠이나 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시니컬한 나 : “기다려, 나도 함께 가겠네!” (p.242)




글 쓰는 나 : 그런데 이건 무슨 형식의 감상문이지? 이번엔 단순하고 평범한 글을 쓰려고 했건만….


- The End -


평범한 인생.jpg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평범한 인생>, p.20)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열린책들, 2021)의 도입부에서 위 단락을 읽는 순간, 나는 ‘평범함’을 긍정하는 이 낯선 체코 작가와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리라 예감했다. 이후에 이어지는 소설 속 주인공의 자서전은 그의 말처럼 단순하고 목가적이었으며 그럼에도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통찰력이 빛났다. 뛰어난 작가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인생’으로도 커다란 위안을 주는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며 읽었다.


소설 중반 이후에 엄청난 반전을 숨겨놓았을 거라곤, 이야기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 무한히 확장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전체로서 이 소설은 거의 경이에 가까운 인식의 확장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마치 잘 조율된 피아노 한 대로 시작한 잔잔하고 서정적인 음악이 갑자기 장단조를 넘나들더니 온갖 악기가 총동원된 웅장한 오케스트라 곡으로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우주적인 하모니를 완성한 하나의 거대한 향연을 본 것만 같았다.


위의 글은 이 감상을 기초로 하여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인 알터 에고(alter ego)를 빌려온 ‘멀티 자아가 함께 쓴 감상문’이다. <평범한 인생>을 읽고 나면 “내 안엔 얼마나 많은 ‘나’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소설 속 화자가 세 명의 자아(평범하고 행복한 사람, 억척이, 우울증 환자)로 분열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서로 다른 여덟 명의 집합이었다고 한 것처럼, 공교롭게도 감상자인 ‘나’도 마지막 ‘글 쓰는 나’까지 포함해 여덟 명으로 분화되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 소설처럼, 평범하기도 평범하지 않기도 한 ‘평범한 감상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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