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영화 <괜찮아, 잘 될 거야>(프랑소와 오종, 2021)

by 이연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말했다. 그가 든 이유 중 몇 가지를 언급해보면 이렇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오므로).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은 원문에서 확인 바란다.)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죽음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기에, ‘죽음에 관한 영화(혹은 소설)를 보는 것이 좋다’라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더불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사유해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괜찮아, 잘 될 거야>(프랑소와 오종, 2021)는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자전소설 <다 잘 된 거야>(작가정신, 2016)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존엄사/안락사’라는 예민하고 무거운 주제를 실제 노년과 중년에 이른 배우들을 기용하여 사실적이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그려냈다. 노화에서 죽음, 상실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과정에 인간 존엄의 문제가 맞물리면서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가 마음을 울리는 영화다.


엠마뉘엘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여동생 파스칼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향한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아버지는 신체장애를 얻어 오른손에 마비가 왔고 휠체어 신세가 된다.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상태는 호전되고 있었기에 두 딸은 안심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아버지는 마치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다. 엠마뉘엘은 큰 충격을 받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온다.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존엄사’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조치 등의 의료행위를 중단해 인간으로서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의미하며, 적극적인 의미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뿐이다. 스위스의 경우엔 안락사 지원 전문 병원을 갖춰 의료진이 마련한 약물을 환자가 자신에게 직접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는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2015년 '안락사'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엠마뉘엘 베르나임의 이 자전적 소설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원작 소설은 영화와 거의 유사한 흐름이지만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독자를 엠마뉘엘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게 한다. 엠마뉘엘은 아버지가 존엄사 의지를 선언한 후에 일반적으로 충격적인 상황에서 거치게 되는 4단계의 심리 변화, 즉 ‘부정-분노-체념-인정’을 차례로 겪는다. 그녀는 처음엔 아버지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만, ‘사고가 난 뒤로 아버지는 이렇게 똑똑히 말한 적이 없었다’(p.61)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아버지가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뱉은 말이 아님을, 또렷한 정신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사회적 죽음을 인지했고 육체적 죽음이 오길 기다리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엠마뉘엘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안락사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의 전문 기관에 연락을 취해 아버지를 스위스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과정에서 엠마뉘엘과 파스칼 자매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 - 아버지의 남자친구(동성애 성향의 아버지임)와 친척들의 반대, 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자살 방조죄라는 법적 문제, 경찰 심문 및 조사 등에 부딪히지만, 결국엔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존엄사 의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자식의 입장은 슬프면서도 숭고했다. 중간중간 아버지와의 관계, 과거의 추억(사랑과 감동의 경험들은 물론 상처의 순간들까지)을 되새기는 딸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스위스 기관의 전문가를 만났을 때 엠마뉘엘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는 경우도 있느냐고 묻는다. 담당자는 자신이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남자에게는 어린 아내가 있었는데 작별의 순간을 위해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철회했다고 한다.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평소 푸른색 계통의 실용적인 옷을 즐겨 입던 그녀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 예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아버지는 딸에게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며 예쁘다고 말하고 엠마뉘엘은 순간 참아왔던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이때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던 딸의 마지막 시도였을 것이다.




영화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경우엔 죽음(죽음의 방식)도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에 내가 극 중 아버지와 같은 입장이라면, 존엄사를 원했을까? 자식들에게 마음의 짐을 안겨주면서까지 존엄사 실행을 부탁했을까? 만약에 내가 딸이라면, 상실의 아픔을 앞당기는 결정에 동의할 수 있을까?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가 수많은 질문을 남기면서도 답은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둔 점이 좋았다. 제목처럼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슬프지만 결코 비참하지 않게,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우아하게 연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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