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미 Aug 18. 2019

'우리'라는 달콤한 노래,
비극의 발단이었을까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를 읽고

*본 서평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여성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소설 <달콤한 노래(아르테, 2017)>는 첫 문장부터 가히 충격적이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이어지는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는 상상할수록 소름이 끼쳐 책장을 다시 펼치기가 꺼려질 정도다. 작가는 현실의 모든 엄마들이, 모든 워킹맘들이 애써 외면해온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과 공포를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아이를 영영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소설은 루이즈라는 완벽한 것만 같았던 보모가 폴과 미리암 부부의 두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흉기로 자해한 사건 현장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야기는 독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질문, ‘대체 왜 루이즈는 살인을 저질렀을까?’의 단초를 찾는 듯 그들 사이에 있었던 그동안의 일들을 기술한다. 사건의 전후가 바뀐 서술.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독자는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 나와 이야기를 잊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작가가 루이즈의 살해 동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소설을 끝내기 때문이다. 결국 인물의 심리와 처한 상황을 깊이 파고들어 비극의 원인을 추론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책장을 덮어도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는 서사는 그만큼 이 소설의 흡입력이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만난 이들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특히 아이들을 사이에 둔 두 여성, 루이즈와 미리암의 사이는 언제부터 틀어진 것일까?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루이즈는 아이를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시키지도 않은 가사도우미 일까지 도맡아 훌륭하게 해내는 피고용인이며, 미리암은 해외로 떠나는 가족 휴가에까지 보모를 초대하고 가끔씩 술자리도 함께 하는 열린 마음의 고용주로 비쳤을 것이다. 심지어 폴의 어머니, 즉 미리암의 시어머니이자 아이들의 할머니가 아이 키우는 일에 간섭을 할 때면 둘은 심리적인 연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정이라는 은밀한 세상의 문 뒤에서 이 둘은 아슬아슬한 권력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얼핏 고용주인 미리암이 권력의 우위에 있고 루이즈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아이를 내어줄 수밖에 없고 아이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할 수밖에 없는 미리암이 엄마라는 이름의 영원한 약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권력을 틀어 쥔 루이즈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그들에게 속해 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확신(p.100)을 품는다.


루이즈가 이처럼 피고용인의 선을 넘어 위험한 욕망을 품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직업으로서 보모는 그 친밀한 정도를 떠올리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외부인도 그렇다고 내부인도 아닌 존재, 즉 경계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미리암이 “당신은 우리 가족이에요. (p.177)” 라며 그녀를 그들 안에 속한 구성원으로 불러주었던 것이 루이즈에겐 그 경계를 잊게 만든 ‘달콤한 노래’였던 것이 아닐까? 삶의 벼랑 끝에 서있던 루이즈에게 ‘우리’라는 말은 그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연장시킬 세 번째 아이를 욕망하면서 동시에 나날이 성장해가는 두 아이들은 그녀의 행복을 앗아갈 걸림돌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극단적인 망상이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이후 소설은 루이즈가 저지른 유아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으로 넘어가면서, 독자는 다시 사건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누구도 진짜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을, 진짜 루이즈가 살인까지 하게 된 동기를 듣지 못한다. 미리암에겐 ‘부재하는 어머니’, ‘야망에 눈이 먼 여자’, ‘착취하는 고용인(p.104)’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지고, 비극의 결말에는 두 여성 모두 사회적으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 사이에서 이유도 모르는 채 순수한 아이들이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달콤한 노래> _레일라 슬리마니


매거진의 이전글 달나라에 대한 상상이 현실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