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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14. 2023

사람 하나 사라질 때 덩달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네

[시 읽기] 허연 '장마 • 장마 • 장마'



장마 장마 장마

- K를 추모함    


  내게서 채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불태우거나 묻어 버리며 여기까지 이 빗속까지 왔네. 하나같이 가슴 뜨겁게 했고 대가를 치른 사랑이었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기도 했네     


  사람 하나 사라질 때 덩달아 사라지는 것들을 나는 그리워하네. 떠난 자가 마지막으로 증명했던 그의 것들. 그의 죽음만큼 나를 흔드는 것들 떠난 자의 것이었으며 이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들 그가 이야기해 주지 않은 세상의 모든 소금 덩어리들이 비를 맞고 있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위해, 자취도 없는 너의 것들을 위해 빗줄기가 퍼붓고 또 퍼붓고 세상 밖으로는 아무것도 새어 나가지 못하네     


  아시다시피     


- 허연, <불온한 검은 피>  




[단상]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기상예보엔 당분간 장맛비가 계속된다고 한다. 창밖의 빗줄기를, 빗속에도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이 시가 떠올랐다.      


'사람 하나 사라질 때 덩달아 사라진 것들을 나는 그리워하네.'라는 시구가 마음에 무겁게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죽음 이후에 그를 상기시키는 것들은 대개 '덩달아 사라진 것들'이다. 그와 함께하던 산책이라든가, 커피를 마시며 나누던 수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통화와 문자 같은 것들... 일상에서 문득 그의 부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와 함께 사라진 무수한 가능성들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이야기해 주지 않은 세상의 모든 소금 덩어리들'은 어쩐지 그 가능성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소금이 장맛비를 맞고 있으니 모두 녹아 사라지겠지, '자취‘도 없이.     


시인은 제목에 'K를 추모함'이라고 적었다. 누군가를 상실한 마음을 이 시로 옮겼나 보다. '퍼붓고 또 퍼붓고' 하는 것이 빗줄기만은 아닐 듯하다. 세상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흐르는 건 시인의 눈물이 아닐까. 애도의 시절은 언제나 '장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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