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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12. 2023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시 읽기] 김경미 '취급이라면'



취급이라면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살아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빗속을 걷고 작약꽃을 바라봅니다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내 마음속 치욕과 앙금이 많은 것도 재밌어서

나는 오늘도

아무리 희미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바다 같은 작약을 빗소리를

오래오래 보고 있습니다     


- 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단상]

시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묻는 시인의 물음에 소포도 보내지 않는 '당신'과 관련이 있나 짐작해 볼 뿐. 시인의 마음속 '치욕과 앙금'의 원인도 '당신'일까.     


그 사정을 알아서 그랬는지, 시인의 말실수에 미용사가 울음을 터트린다. 오랜만에 찾은 미용실에서 시인은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를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라고 말해 버렸다. 그저 말이 잘못 나온 것뿐인데 그 속에서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오래 격리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찾으면 지레짐작인 걸까. 미용사는 아마도 나처럼 말속에 짙게 묻어 있는 외로움과 상실감 때문에,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목소리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시인은 여전히 빗속을 걷고 작약을 보며 '살아 있는 게 너무 재밌'다고 말한다. 오늘이 '아무리 희미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잡지 속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도 가뿐히 무시할 수 있다.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이 있어서 시인은 '당신'을 향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어쩐지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나의 세계는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 대신 무엇을 취급하는지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괜스레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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