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이수정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구름이 태어나는 높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
새를 날리는 바람의 가짓수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
일찍 온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
밤새 씌어졌다 지워질 때
비로소 반짝이는
가을의 의지
고르고 고른 말
이성적인 배열과
충동적인 종결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는 가을
- 문학동네시인선100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수록시 이수정의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단상]
시의 제목처럼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의 높이(‘구름이 태어나는 높이’)가 달라졌고 산책길 주변 나무들은 하나둘 낙엽(‘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을 떨구고 있다. 바람에 맞서 달리기라도 하면, 몸에 닿는 바람의 촉감이 달라졌고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도 커졌다. 당연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밤새 씌어졌다 지워’지는 것은 아마도 ‘시’일 것이다. 가을밤은 시를 쓰기에(그리고 글을 쓰기에도) 좋은 계절이니까. ‘고르고 고른 말’을 ‘이성적’으로 ‘배열’하다가 ‘충동적’으로 ‘종결’한다는 것은 시인이 귀띔해 주는 작법 비결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디 나도 한번, 나의 언어로 가을을 번역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각자의 언어로 / 번역되는 가을’은 얼마나 다채로운 빛깔을 띨지 궁금해진다.
*이미지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