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김경미 '커피숍에서'
팔이 닿을 듯 가까운 옆 테이블
열아홉 살 연극배우 지망생이 운다
열아홉 살이나 됐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해요 운다
마흔네 살이라는
연극 연출가도 운다
네 나이가 울면 나는 어떡하니 운다
팔이 닿을 듯 가까운 옆 테이블의
낯선 나는 오십 대
나도 운다
너희들이 울면 나는 죽어야겠다
커피숍 안의 다른 사람들도 힐끔대다가
저마다 다 같이 운다
내 나이는 죽지도 못해요 운다
커피숍엘 들어오려던 아파트도, 빌딩도
도시도 멈칫하면서 운다
국경도 운다
세상도 운다
대부분 형편없이 운다
- 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
[단상]
커피숍 옆 테이블에서 열아홉 살의 연극배우 지망생이 운다. 열아홉 살이나 됐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하다고. 곁에 있던 마흔네 살 연출가도 운다. "네 나이가 울면 나는 어떡하니" 하면서. 옆에서 이 얘기를 우연히 들은 오십 대 시인도 운다. "너희들이 울면 나는 죽어야겠다"며. 여기까지 읽으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웃으면서도 어쩐지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그런데 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무슨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커피숍 안 사람들은 "저마다 다 같이 운다". 이후엔 아파트도, 빌딩도, 도시도 울더니 급기야 울음은 국경을 넘어 세상까지 번진다. 세상이 모두 우는데 그것도 "대부분 형편없이 운"단다. 이제 더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도 한바탕 울어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