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단어를 찾아서'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고문실 벽처럼 피로 흥건하게 물들고,
그 안에 각각의 무덤들이 똬리를 틀기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는 것,
지금 내가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기에.
터무니없이 미약하기에.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하고, 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검은 노래>
[단상]
이 시는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쓴 시다. 당대엔 출간되지 못했고 시인 사후에 원고가 발견되어 출판사가 시집으로 엮었다. 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언어를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무력감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바라며 단어를 찾아 헤맨다. 말들은 솟구치는데 표현할 단어가 없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화산' 같은 단어, '무서운 신의 분노'나 '피 끓는 증오' 같은 단어다. 그러니 어떤 표현도 '충분치 않'았으리라. 언어는 이토록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그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매는 심정(‘찾을 수 없음’을)을 시로 써냈다. 무엇이라도 쓰지 않고는 못 견뎠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