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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Dec 22. 2023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시 읽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단어를 찾아서'



단어를 찾아서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따져보고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고문실 벽처럼 피로 흥건하게 물들고,

그 안에 각각의 무덤들이 똬리를 틀기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그들이 누구였는지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는 것,

지금 내가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기에.

터무니없이 미약하기에.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하고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검은 노래>




[단상]

이 시는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쓴 시다. 당대엔 출간되지 못했고 시인 사후에 원고가 발견되어 출판사가 시집으로 엮었다. 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언어를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무력감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바라며 단어를 찾아 헤맨다. 말들은 솟구치는데 표현할 단어가 없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화산' 같은 단어, '무서운 신의 분노'나 '피 끓는 증오' 같은 단어다. 그러니 어떤 표현도 '충분치 않'았으리라. 언어는 이토록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그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매는 심정(‘찾을 수 없음’을)을 시로 써냈다. 무엇이라도 쓰지 않고는 못 견뎠으리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검은 노래>(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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