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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09. 2024

나를 짓는 자유, 글쓰기

홍세화 <결: 거칢에 대하여>(한겨레출판, 2020)를 읽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p.84) 

   홍세화의 사회비평에세이 <결: 거칢에 대하여>의 책장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생각하는 존재라면 이 물음을 부단히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의문을 나는 언제 처음 떠올렸던가?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 사회의 교육을 받은 나는 단언컨대 ‘생각하지 않은 생각’(p.86)으로 가득 찬 존재였다. 주입식 교육을 성실하게 숙지하는 능력으로 학업 성취도를 평가받았고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의문 없이 풀어낸 성적으로 대학을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난 ‘20 대 80’에서 ‘20’ 퍼센트에 속하는 구성원이라 믿으며, ‘완성 단계에 이른 듯 살아가는 사람’(p.86)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선망하는 학교를 졸업했고 계열사이긴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담당하고 있었던 마케팅 전략 설계업무도 내 생각이 ‘맞다 혹은 옳다’고 ‘우월하다 혹은 유일하다’고 믿으면서 남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생활을 유지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까, 상상하면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기존의 내 생각을 의심하고 실제로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한 때는, 글을 쓰면서부터다. 정확하게 말하면 ‘함께’ 글을 쓰면서부터다. 2019년 1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100일 글쓰기’를 시작으로 글쓰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나와는 다른 성별과 연령대, 다양한 배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책이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글쓰기가 전제 조건이었기에 사전에 내 감상과 의견을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정연하게 한 편의 글로 정리해야 했다. 글을 짓는 과정은 전체 주제와 구성부터 적확한 단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머릿속 가득한 혼돈을 글이라는 형태로 정리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짓는 자유’(p.34)를 누렸다. ‘숙지하는 객체’에서 ‘사유하는 주체’(p.96)로 거듭나는, 그야말로 생각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을 품고 모임에 나가면, 신기하게도 하나로 모였던 내 생각이 흐트러지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게 아닌가. 다른 이의 글에서 나와는 다른 해석이나 내가 놓친 부분을 발견하는 건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점차 커다란 희열로 다가왔다. 내 글이 아직 여물지 못했다는 자괴감보다는 오늘도 하나를 배웠다는 충만감이 컸다. 내 생각이 완성 단계는커녕 턱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인식은 ‘회의하는 자아’(p.69)로 이어졌다. 이전엔 책이나 영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제는 의문점을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된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고 그 답을 다시 의심하고 반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은 계속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습관화하기!’(p.79) 저자는 이것이 회의하는 자아의 일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책을 읽고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나는 어떤 결의 사람인가’에 ‘고결함을 지향’(p.34)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여기서 ‘고결함’이란 남과의 비교 우위를 따지는 ‘고귀함’이 아니라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p.35)을 통해 얻는 선물 같은 것이다. 지금은 비록 거칠고 성긴 결을 가지고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매번 한 가닥의 사유라도 보태어가며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아가 저자처럼 ‘나를 짓는 자유’의 도정에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p.199)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모든 이웃의 존엄한 삶을 위해 참여하고 연대하는 ‘소박한 자유인’ 홍세화 선생의 행보가 큰 울림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홍세화, <결: 거칢에 대하여>(한겨레출판, 2020)




홍세화 선생은 2024년 4월 별세했다. 그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 이어 ‘소박한 자유인’의 대표를 역임했고,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마중’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벌금형을 받고 징역을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장’을 맡기도 했다. <결: 거칢에 대하여>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시대의 어른인 홍세화 선생이 남기는 마지막 당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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