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클로델의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2024)을 읽고
당신은 금을 탐하고 재를 뿌린다.
당신은 고결함을 더럽히고, 순수함을 시들게 한다. 증오는 당신의 양식이고, 무관심은 당신의 나침반이다. 잠의 피조물인 당신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때조차도 항상 잠들어 있다. 당신은 잠들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p.9)
필리프 클로델의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행나무, 2024)의 도입부이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등장해 ‘당신’의 허영심을, 부패함을, 무관심을 비판한다. 여기서 ‘당신’은 소설 속 인물들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일 것이다.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때조차도 항상 잠들어 있다’는 말에 뜨끔하다. 작가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미래는 당신의 시대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p.9)라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소설을 열었을까.
모든 것은 9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해변에서 시작되었다.(p.14)
9월의 어느 날, 개의 군도에 있는 어느 섬 해변에 익사체 세 구가 떠내려오며 사건은 시작된다. 해변을 산책하던 노파와 아침 운동을 하던 교사 등 시체를 처음 발견한 몇몇 사람들은 시장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익사한 이들은 바다 건너 전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배에 오른 난민들로 추측되지만, 어쩌다가 그들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장은 최초 목격자들을 포함해 지역의 의사와 신부까지 한자리에 모아놓고 시체 처리 문제를 의논한다. 그리고 섬 전체의 이익(온천 리조트 관광 산업 유치)을 위해 시체를 유기하기로 결정하고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도록 요구한다. 모든 이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교사만이 그 결정에 반대한다. 면밀한 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한 그의 의견은 묵살당한다.
결국 교사는 일도 생활도 뒷전으로 하고 홀로 마네킹을 이용한 조류 실험과 익사자의 신원 조사에 들어간다. 시장을 비롯한 나머지 연루자들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한다. 그들은 기억을 지우고 일상을 ‘연기’하고는 있지만 익사자들의 잔상이 '그들의 눈꺼풀 안쪽에 꿰매어져 있'(p.57)는 것처럼 수시로 떠올라 불편한데, 교사가 이를 자꾸만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은 교사의 고발을 외지인 출신의 반공동체적 행위로 매도하고 그를 점차 파멸시킨다.
시간이 흐른 뒤 교사의 의심이 옳았음이 밝혀진다. 익사체는 단순한 사고 사망자가 아니었다. 절박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약속하고는 개의 군도의 바닷물 속으로 떠밀어 버린 끔찍한 이들이 있었다. 이후 섬의 주민들은 ‘자신의 공동체 안에 노예상이, 인신매매업자가, 꿈의 밀매상이, 희망 도둑이,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살아야만 했다.’(p.220)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세상은 잠잠해졌지만, 끔찍한 비밀을 간직한 이들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어느 날 의사는 시장을 찾아가 간밤에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한다. 익사자들이 밀려온 해변이 거대한 야외 공동묘지로 변해버린 꿈. 이에 시장은 망설이며 말한다. “여보게, 왜 그걸 꿈이라고 말하는 건가?”(p.243)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신께서는 점차적으로 일을 그만두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탓이지요.(p.84)
지금의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신이 점차 일을 그만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를 묵인하고 있는 ‘우리의 탓’이다. 우리는 전쟁의 소식을 뉴스로 매일같이 접하면서도 나와 내가 포함된 공동체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며 침묵한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에 등장하는 이름도 없는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은 이 시대의 우리를 가리킨다. 전쟁과 난민 등 세계적 이슈에 무관심한 채 잠들어 있는 ‘아직 죽지 않은’ 우리 말이다. ‘이 소설은 어두운 현실을 풍자하는 한 편의 빛나는 우화이다.’(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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