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창비, 2019)을 읽고
<<디디의 우산>>(창비, 2019)은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집이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편이 실려 있다. 소설집 제목이 낯이 익다 했더니 예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 제목과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힌트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있던 2014년에 이전에 발표한 단편 <디디의 우산>을 부숴서 <웃는 남자>를 썼으며, 이것이 이 소설집에 수록된 <d>의 전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가 부수고 다시 새로 지은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전 작품이 어딘가 미진하다고 느꼈던 걸까?
작가는 디디가 ‘혁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디디의 우산>에서 디디는 ‘혁명’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하고 놀란다. ‘사람 많은 곳에서 그 말을 했다는 게 꺼림칙’(p.173)했다고. 그랬던 디디가 <웃는 남자>에선 그 에피소드를 d에게 말하며 ‘혁명, 하면 뭐가 생각나느냐고’(p.179) 더 적극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디디의 입을 통해 ‘혁명’이라는 단어를 들은 d가 <d>에서는 노동의 신성함을 알아간다. d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p.139) 라며 디디를 잃은 상실감에 아파하면서 광장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을 인식한다.
혁명이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혁명’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물론이고 들은 사람도 어딘가 크게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디디를 사고로 잃고 어두운 굴에 틀어박혀 있던 <웃는 남자>의 d가 <d>에서는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삶에서 상실이라는 것이 필연적일 때, 인간 존재의 ‘하찮음’(p.144)에 저항하는 방법의 하나는 아마도 함께 애도하는 것일 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애도의 방식’의 하나로 ‘혁명’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단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얼핏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d>가 박근혜 탄핵 이전의 세월호 광장을 재현했다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촛불혁명’을 거쳐 박근혜가 탄핵된 직후를 그렸다. 이제 혁명은 한 사람의 변화를 넘어 더 큰 사회의 변화를 꿈꾼다. <d>에서 무척 뜨거우니 우습게 보지 말라던 오디오 진공관의 불빛은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손에 들린 촛불이 되어 활활 타오른다. 모두를 위해 우산을 준비하던 마음은 이제 빗속에 함께 서 있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선고한 날, 소설 속 화자는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p.162)를 반복해서 묻는다. ‘혁명은 마침내 도래한 것일까’(p.314)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은 여전히 세상은 ‘말하기, 생각하기, 공감하기의 무능성’(p.220, 한나 아렌트 인용)으로 타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이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p.159)하니까. 따라서 혁명은 완성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승리의 함성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를 돌아보며 잠든 이들을 깨우는 방식으로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이 소설의 인상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 다치는 광경을 우리는 너무 보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누구도 다치게 하지 말라, 우리는 이미 너무 겪었다고.’(p.309)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주인공은 작가다.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p.151)를 ‘완주라는 제목’(p.151)으로 쓰고 싶은 사람. 어쩌면 이 인물은 황정은 작가 자신의 소망을 투사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단편 <디디의 우산>이 여러 번 변주되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귀결된 것은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써서 이야기를 ‘완결/완주’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그동안 개개인이 겪었을 마음고생, 몸 고생이 떠올라 눈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p.313) ‘혁명이 이루어진 날’(p.314)이라 여길까? 아마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이후에도 작가가 열세 번째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것처럼, 혁명의 이야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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