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황인찬,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밀었는데 너무 가벼웠다
어쩌자고 사랑은 여기서 죽나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개나 고양이가 파헤쳐버릴 테니까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꿈에는
내가 두고 온 죽은 사랑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왔다
죽은 사랑은
집 앞을 서성이다 떠나갔다
사랑해,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을 내게 미루는 것 같고
사랑하라, 그런 말은 그저 무책임한데
이런 시에선 시체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음 날 공원에 다시 가보면
사랑의 시체가 두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다
- 황인찬,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단상]
독특하게도 시 제목에 따옴표가 있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시인의 말일까? 그렇다면 시인은 사랑 고백을 했다가 대차게 차인 경험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럿 있었나 보다.
이번에도 공원에서의 고백은 "미안하다"는 답변을 들었나 보다. 그의 사랑은 죽어서 '시체'가 되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데, '어쩌자고 사랑은 여기서 죽나'라는 자책 같은 시구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시쳇말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다.
죽은 사랑은 쉽게 떠나가지 않는다. 꿈에도 나타나 집 앞을 서성이고 다음 날 공원에선 두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 쉽게 정리되지는 않을 터. '사랑해', '사랑하라'와 같이 사랑에 관한 말은 모두 시인에겐 아직 어렵기만 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