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시 읽기] 세사르 바예호, '같은 이야기'

by 이연미

같은 이야기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고생한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무미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데... 그러나 빛이

폐병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가, 저 멀리서도,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걸 구성진 노래로

알려주는 곱사등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날.


- 세사르 바예호, ‘같은 이야기’




[단상]

세사르 바예호의 시집을 소장하게 된 이유는 라틴 아메리카의 시인들을 소개한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김현균, 21세기북스, 2019)에서 시구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를 접하고 나서다. ‘바예호는 한마디로 고통의 시인이다.’라는 저자의 소개말을 읽고 보니, 저 한 문장에 시인을 평생 괴롭혔을 고통이 압축된 것처럼 느껴졌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약한 몸, 형제의 이른 죽음과 무고한 옥살이, 가난과 배고픔으로 점철된 하루하루…. 그의 사정을 ‘모두들’ 알지만, 그가 직접 맞닥뜨리는 현실은 ‘아무도’ 모르기에 시인은 외롭게 반복한다. ‘나는 신이 /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시 속에 구멍이 있다고 말한다. 말해지지 못한 침묵, 아무도 모르는 눈물. ‘1월을 두고 /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라는 건 자신의 일면이 아닌 전부를 알아주길 바라는 시인의 호소일까. 빛과 어둠의 모순으로 가득한 자신의 일생을 누군가 이해해 주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일까.

‘나는 신이 /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 아주 아픈 날.’ 마지막 행에서 비통함이 가슴을 찌른다.


KakaoTalk_20251219_114323540.jpg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