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케밥과 물티슈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

by 이연미

터키가 지금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전, 다소 낯선 여행지였던 2003년에 나는 터키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이스탄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직은 서툰 배낭 여행객이었던 나는 터키라는 미지의 나라와 이곳 사람들에 대해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부끄러운 기억 한 조각. 나의 편협한 사고를 깨닫게 했던, 그래서 조금 더 열린 마음의 여행자로 거듭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터키는 유독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여행 정보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 정박한 배에서 파는 '고등어 케밥'이 그렇게 별미라며 터키를 먼저 여행한 사람들이 꼭 한 번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케밥에 고등어가 들어있다니 도무지 맛도 모양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긴 우리 일행은 이스탄불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고등어 케밥을 먹기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향했다.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은 고소한 냄새와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멀리서도 찾기가 쉬웠다. 배 앞에는 이미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었다. 당시는 터키를 여행하는 동양인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터키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이것이 긍정적인 의미의 관심과 호기심의 표현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이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였던 우리에게는 부담스러웠다. 특히 터키에 대한 여행 정보 중에는 '물건을 살 때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뚜껑이 열려 있는 음료수는 절대 마시지 마라' 등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어 케밥을 하나씩 산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거리에 펼쳐져 있는 작은 의자에 둘러앉았다. 비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고등어 케밥은 의외로 아주 담백하고 맛있었다. 빵 속을 채운 양파가 고등어의 기름기를 잡아줘서 맛의 조화가 특히 훌륭했다. 생전 처음 먹어본 맛이라며 우리끼리 맛 평가를 하며 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등어 케밥 (Balik-ekmek) *출처_oddviser.com


그때였다. 한 남자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터키어로 뭐라 말을 걸면서 물티슈를 내밀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어린아이들이 의자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케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일회용 물티슈를 팔고 있었다. 끽해야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었고,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한 어른 한 명이 멀찍이서 팔짱을 낀 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 어쩐지 동양에서 온 관광객인 우리가 그의 장사 타깃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필요 없다는 의미로 “No, thanks!”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아까의 그 남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우리에게 쭈뼛쭈뼛 다가와 물티슈를 내밀었다. 남자가 물건을 팔아오라고 아이를 억지로 보낸 것 같아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남자에게도 들릴 정도로 단호하게 "No!"라고 외쳤다.


그런데 잔뜩 굳어 있는 우리의 표정과는 달리 어쩐 일인지 남자와 아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터키 사람들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한 터키 사람이 영어로 “Gift”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물티슈를 우리 앞에 재빨리 내려놓고는 멀리서 지켜보던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남자는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머리를 칭찬하듯 쓰다듬어 주었다.


‘선물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우리는 잠시 멍해 있었다. 곧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들의 나라를 찾은 이방인에게 자신들이 파는 물티슈를 작은 선물로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 순수한 마음에 우리가 멋대로 상업적인 잣대를 갖다 대며 오해를 했던 것이다. 그들의 호의와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매몰차게 거절한 건 우리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스탄불.jpg 이스탄불 술탄아흐메트 모스크 ('블루 모스크')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게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벽을 만들어서 영원한 이방인, 즉 외로운 여행자로 남기가 쉽다. 마음을 조금만 열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때로는 내가 먼저 다가가기도 하면서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다. '외로운 여행자'로 남을지,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될지는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낯설고 외롭고 서툰 길에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
그래서 더 사람다워지는 것,
그게 여행이라서.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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