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기에 너무 무거운 소원

대만 스펀에서 천등 날리기

by 이연미

대만 스펀(Shifen) 역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려 역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미 수많은 천등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부터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늘어선 가게 중 한 곳에 들어가 천등을 골랐다. 천등은 색깔에 따라 소원의 주제가 다른데 빨간색은 건강운, 노란색은 재물운, 파란색은 직업운, 주황색은 애정운 등 다양했다. 친구와 나는 네 가지 색을 조합한 천등을 선택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천등을 한 면씩 펼쳐가며 소원을 적었다. 천등이 생각보다 꽤 크다고 느꼈는데 소원을 적다 보니 칸이 모자랄 지경. 둘이서 경쟁적으로 적어 내려간 소원은 점점 거창해졌다. 표현은 달랐지만 거의 이런 식이었다.


신체의 힘과 아름다움이 균형을 이루며 무병장수하기를(건강)
꿈을 실현하고 일에서 성취하여 명성을 얻기를(성공)
남부럽지 않은 부를 손에 넣어 떵떵거리며 살기를(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퍼펙트한 그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기를(연애)


소원을 다 적은 천등은 기찻길 가운데에서 하늘로 날린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천등을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환호했다. 이제 우리 차례. 우리는 천등의 양 옆을 붙잡고 서서 기대에 찬 모습으로 사진을 여럿 찍었다. 사인에 맞춰 천등을 놓았는데... 우리의 천등은 위를 향해 조금 날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불이 붙었다. 순간 얼음. 불붙은 천등의 충격적인 모습. 주위 사람들의 탄식 소리.


상황 파악이 되자 민망함이 밀려왔다. 바람의 영향일 수도, 천등을 놓을 때 잘못 놓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 우리의 욕심이 과했다.


그렇게 하늘에 닿기엔 너무 무거웠던 소원은 많은 부분을 덜어낸 후에야 떠올랐다. 이번엔 불길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사히.


IMG_20180418_150145_906.jpg 다행히 하늘로 올라가는 두 번째 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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