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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14. 2019

조르바와 함께 한 여행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본 서평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퇴사 후 자유의 몸이 되면, 긴 여행을 다녀와야지’ 생각했다. 목적지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몸과 마음만 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면… 지친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맑은 샘물 같은 여행이 필요했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짐을 꾸리면서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했다. 해당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책이나 그 나라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을 가져가면 더 생생하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책도 나의 여행에 영감을 주어 좋다. 고민 끝에 이번 여행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000)>와 시집을 한 권 준비했다. 시집은 잦은 기차 이동 시에 읽기 좋을 것 같았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행의 전형성을 탈피할 모험심을 북돋아 줄 것 같았다. (마침 독서토론 모임에도 선정된 책이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10시간의 비행 동안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소설은 펜과 잉크로만 세상을 배운 젊은 지식인인 ‘나’가 야성의 영혼을 가진 60대의 노동자 ‘조르바’를 만나 함께 크레타 섬으로 떠나며 시작됐다. 나는 소설 속 화자와 비슷한 – 종이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게(p.14) 된 – 상태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 세상에 맞서는 태도는 소설 속 화자뿐만 아니라 나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고, 나의 육체는 비좁은 좌석에서 당장 뛰쳐나가겠다며 아우성이었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제 막 시작된 여행이 조르바로 인해 이전과는 다르리라는 기대가 자라났다.


여행 기간 내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나는 잠이 들기 전까지 조르바의 모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소설 속 화자에게 건네는 말들이 마치 나에게 하는 충고 같았다. 그의 단순하고도 통쾌한 주장은 지금까지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춰 살아온 나의 숨통을 트이게 했고, 떠나 왔음에도 현실의 줄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뜻밖의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p.17)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요?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p.17)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p.152)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p.364)


세상 구석구석, 인간의 영혼 구석구석을 누빈(p.77), 이 뱃사람 신드바드는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나에게 충고했다.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p.203),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나(p.227)라고. 그래서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이 그랬듯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만사가 기적임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그리고 그는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보는(p.219)’ 용기를 내라고 부추겼다. 꽈당하고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의 존재 깊숙이에서 나온 이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다음 날의 여행은 내 모든 감각을 열고 느끼리라, 작은 일탈에 주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했다. 미리 짜 놓은 일정에 얽매이지 않았고 계획이 틀어져도 개의치 않았다. 예전이라면 발을 동동 굴렀을 상황에도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며 태연했다. 현지인의 뜻밖의 초대에도 응했다. 두려움보다 모험심이 나를 움직였다. 낯선 사람들과 벽을 허물고 사람의 온기가 담긴 말을 건네려 노력했다. 여행의 매 순간 - 장소도, 물건도, 사람도 -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꼈다. 갤러리의 명화를 바라볼 때도 책으로 터득한 지식보다는 마음의 울림에 귀 기울였다. 여행이 끝날 즈음, 조르바의 “춤추시겠소? 춤춥시다! (p.106)”라는 제안이 산투르 연주 소리와 함께 들리는 듯했다. 


조르바와 함께 한 여행을 통해 나는 인간의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배웠고, 정해진 틀에서 스스로 벗어났다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소설 속 화자를 통해 당부한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p.251)’고. 나는 결심했다. ‘전력을 기울여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순간순간에 매달리겠노라고(p.251)’. 


<그리스인 조르바> _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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