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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y 04. 2020

아보카도와 카르텔,
그 불편한 진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 '아보카도 전쟁' 편


아보카도 요리를 좋아한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포크로 으깨서 다진 양파와 토마토를 넣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과카몰리를 만들어 먹는다. 과카몰리는 나초를 찍어 먹거나 다른 음식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또는 얇게 자른 아보카도를 토스트 위에 올리고 올리브 오일과 후추, 크러쉬드 레드페퍼를 살짝 뿌려서 먹어도 맛있다. 아보카도의 단점은 익었을 때 재빨리 먹지 않으면 상한다는 점(말 그대로 'Rotten') 말고는 없는 줄 알았다.    

 

*출처_Unsplash


아보카도는 ‘숲 속의 버터’라고 불릴 정도로 부드럽고 맛이 좋아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슈퍼푸드 중 하나로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발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보카도에 관한 불편한 소문들이 들려왔다아보카도에 녹색의 금(Green Gold)’이니 피의 아보카도(Blood Avocado)’니 하는 불길한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저 수요는 급증했는데 반해 공급량이 달려 가격이 상승했나 보다 정도로만 짐작했다. 그래 봤자 식자재 중 하나에 불과한데 문제라고 해봐야 얼마나 큰 문제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완전히 잘못짚은 생각이었다.     




<부패의 맛(Rotten)>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각종 먹거리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숨겨진 부패와 비리를 파헤치는 형식이다. 그중 시즌2 1화의 제목이 아보카도 전쟁(The Avocado War)’이다. 


다큐멘터리가 취재한 아보카도의 주요 생산지 칠레와 멕시코의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칠레의 페토르카 마을은 당장 주민들이 마실 식수가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지역을 흐르던 두 개의 강은 이미 강바닥을 드러내며 메말랐다. 이유는 아보카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서다. 아보카도는 다른 농산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대략 아보카도 한 알을 생산하기 위해 70~320L의 물이 필요한데, 이는 성인이 약 6개월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물 부족 사태는 칠레 정부가 물을 민영화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재력이 있는 큰 규모의 아보카도 농장들만이 물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일반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하고 마실 물조차 없어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었다.  


   

페토르카 마을의 말라버린 강 *출처_ Google


아보카도의 원산지인 멕시코의 상황은 더 경악스럽다. 미초아칸 주의 탄시타로 마을은 카르텔의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아보카도와 카르텔이라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조합이다. 카르텔은 아보카도가 엄청난 수입원이 되자 마약 대신 손쉬운 돈벌이로 아보카도에 눈을 돌렸다. 카르텔 조직은 아보카도 농장주와 그의 가족들을 납치, 협박, 강탈했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카르텔의 만행은 계속되는데 부패한 지역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민간인 무장 단체인 자경단을 조직해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카르텔과의 폭력적인 마찰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탄시타로 마을의 민간 무장 단체 *출처_Netflix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착잡한 심경을 지울 수 없었다. 아보카도 전쟁’ 뒤에는 경제적인 이득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과 그들과 결탁한 부패 정치 세력폭력 조직이 있었다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내몰리고 있었다.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 걸까다큐멘터리는 커피의 경우처럼 윤리적 생산과 공정 무역(Fair trade)을 감시하는 전 세계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보카도를 먹지 않는 것일까? 전문가는 아보카도 소비를 갑자기 줄이는 것은 오히려 생산자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고 충고한다. 결국필요한 건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다이러한 문제가 단지 칠레나 멕시코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관련 정부와 세계 무역 기관들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부패의 맛(R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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