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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y 06. 2020

청춘을 위한 지침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도 그대 자신에게 – 그다음으로는 그대보다도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문예출판사, 1999)>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는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고도 당부한다. 서문에서부터 앞으로 전개될 그의 삶의 철학이 녹아있다.      


앙드레 지드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소생한 후 삶의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한다. 이때의 깨달음과 생의 전율을 시, 일기, 대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지상의 양식>이다. 지드의 사상적 자서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찬양하고 약동하는 생()을 응원하는 청춘을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순간에 경탄하라     

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지드는 “각 순간의 ‘현존’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물으며,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도 미래의 기쁨을 미리 준비하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니 순간의 유다른 새로움을 붙들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시선을 현재에 두고 이 순간의 경이로움에 감응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조르바는 자신이 걷어찬 돌멩이가 사면에서 굴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말한다. “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이를 듣고 소설 속 화자는 생각한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추억일지라도 나에게는 행복의 잔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주 조그만 물방울이라도, 그것이 눈물 한 방울일지라도, 나의 손을 적셔 주면 곧 나에게 더 귀중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시간을 과거의 좋은 시절을 돌아보는 데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는 이미 생명을 다한 이야기이고 중요한 건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지금 - ‘나의 손을 적시는 눈물 한 방울’처럼 -인데 말이다. 지드는 또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생각에도 반대한다. 그는 고통스러운 일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낫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에 격하게 동의한다. 모든 행복을 뒤로 미루고 그저 현재를 ‘버티는 삶’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약동하고 분방한 생을 살아라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의 맨발이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먼저 감각이 앞서지 않은 지식은 그 어느 것도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지드는 그대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책들을 불태워버려야 한다”라고 외친다. 글로 배운 지식은 던져버리고 세상으로 나가 온몸의 감각으로 경험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그가 이 책의 1927년판 서문에 덧붙인 ‘도망과 해방의 안내서’, ‘헐벗음에 대한 옹호’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나는 밤이 끝나기까지 새로운 빛의 희망을 품고 있다. (...)한 세대가 올라오고, 한 세대가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무장을, 생의 환호로 든든히 무장을 하고 올라오고 있는 거대한 세계를 나는 본다.    


지드는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생의 환호를 느낀다. 이렇게 생동하는 일출을 직접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일출에 대해 기껏해야 ‘하루’의 단위를 넘지 못했던 사유가 지드의 안내를 받으며 ‘한 세대가 지고 다음 세대가 올라오는’ 거대한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청춘들이여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우리들의 넋이 무슨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넋보다 더 치열하게 탔기 때문일 것이다. (...) 나는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주리라.   


지드는 편하고 익숙한 것에 머물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한다. 삶에 열정을 갖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나의 길’을 걸어가라고 말한다. 순간에 감탄하는 삶,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청춘들에게 지침이 될 만하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로 유명하다. 카뮈는 한 세대에 끼친 충격을 보자면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며 찬사를 보냈다. 나는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접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지금 느끼는 마음 벅참이 더 강렬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 책을 청춘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마치 우리들 앞의 찬물이 가득 찬 유리잔 같을 것이다. 열병 환자가 손에 들고 마시고 싶어 하는 그 젖은 유리잔 말이다. 그는 단숨에 마셔버린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감미로운 유리잔을 입에서 떼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토록 물은 시원하고 열은 안타깝게 목을 태운다.   


<지상의 양식> _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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