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담에 대하여
무엇이 달라졌을까
노트에 적어둔 올해의 정리 그리고 새로운 한 해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 내려 간 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어제와 같은 루틴(방청소, 설거지, 이불정리, 환기시키기, 새벽독서 및 글쓰기)을 수행하고 반납해야 할 책들을 챙겨 나간다. 오전 미팅 전에 도서관 두 곳에 들려 아이들과 아내가 읽은 책, 내가 본 책들을 반납하고 이번주부터 새롭게 읽어나갈 도서 몇 권을 빌리려 하다, 약속에 가야 하니 두툼한 책 한 권을 빌려 약속 장소로 이동하며 20페이지가량을 읽는다. 다시 돌아와 나머지 책들을 빌리면 신정 연휴와 이번 주말까지 풍족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겠단 기대감으로 들뜬다. 그간 묵혀두고 쌓아두기만 했던 책 300여 권을 정리한 이후로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2024년이 다 가기 전에 이런 정리들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매년 기부하는 옷가지 들도 접수를 마무리했고(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니다. 손과 발이 빠른 아내가 있음에 감사한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새로운 한 해란 모름지기 묵은 것을 비워내고 좋은 것들만 채워서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대상이다. 새로운 다이어리, 노트, 문구류, 가방, 운동화 등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살아있는 시점부터 되짚어봐도 늘 그랬다. 그리고 12월 31일 23시 55분부터는 온 가족이 마루에 모여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방송과 모 방송사의 시상식들을 돌려 보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한동안은 형식적이었다.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맘이야 늘 한결같을 것인데 이 시기에는 유난스럽다. 그래, 남들도 다 이렇게들 하나보다 생각하며 그렇게 새해를 맞는다. 새로운 각오로 무언가를 해봐야지 생각했던 것들은 한 달이 가기도 전에 동력을 상실하기도 하고 또 그런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한 해는 점점 묵은해가 되어간다. 그리고 내년 이 시점 언저리에 우린 또 비슷한 생각과 행동들을 반복할 것이다. 도대체 1년간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며 말이다. 어제와 같은 하루이고, 작년 나의 삶과도 크게 바뀌는 것 없이 돌아갈 시간들인데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실망과 자책이 늘어나기도 한다.
꿈이 있고 욕심이 있던 자신의 시간에 너무 많은 족쇄를 채우기도, 짐을 지우기도 했다.
점점 해야만 하는 것들은 늘어나고, 나는 나이가 들어 지쳐갔다. 같은 것을 하더라도 속도가 떨어짐을 감지하지만 여전히 난 괜찮은 거라고 속으로 되뇐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엔, 이미 이 세상의 흐름과 원리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져 가는 나이가 되었다.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이 모습 그대로 남은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45년을 버텨온 자신에게 스스로가 부여하는 선물이라 생각하게 된다.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의미로 가득하니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이유도, 굳이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 애쓸 이유도 없다. 그저 나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 용기가 2025년 새해라고 곱절의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는다. 진창이었던 오늘의 하루가 1월 1일이 되었다고 판타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하고, 방청소를 하고 환기를 시키며, 설거지를 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 일상이 내년에도 반복되는 것. 그것이 의미다. 매일 같은 것을, 건강한 생각과 마음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이고 감사이다.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은 생의 순간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갖는 무게를 깨닫는 2025년이 되기를. 부디 건강히 그리고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