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용기에 대하여
잔뜩 흐린 날에도 우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
올려다본 하늘에 진회색 구름만 가득한 날이라 머리 위 몰려오는 먹구름 뒤 감춰진 폭우를 예상해 볼 수 있는 하루라도 해볼 수 있는 일은 있다. 우산 뒤에 숨어 주저하기만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행동을 촉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주지하려 함은 아니다. 분주하게 살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 하루 그리고 삶은 나의 기분과 환경과 날씨를 탓하기에 짧고도 소중하다.
검은 하늘 어디에선가에도 별은 빛난다.
검은 바탕 아래 무지개색으로 글을 써볼 수도 있고 단조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대로 둘 수도 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선택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유사한 비구름이 몰려올 때 우리는 또다시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궂은날이 올 것만 같은 그런 날, 우리는 다시 우산 뒤로 숨게 될 것이라는 거다. 매번 그렇게 다음 장을 넘기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간혹 어떤 경우 잔뜩 움츠리고 뭔가를 시도하지 않으며 그저 무탈하고 조용히 넘기는 것이 좋다는 '운세'를 듣는다. 신뢰성과 과학적 근거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매뉴얼을 따라갈 참이라면 인생의 계획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올려다본 하늘은 매번 같은 모습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날, 1분 간격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은, 그의 역할대로 유유히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걷히고 또 채우고 어두워지기도 하고 다시 그 뒤에 숨겨둔 오늘의 태양을 내어 보인다. 무엇이라도 해볼 만한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자연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매번 좋은 날도 매번 궂은날도 없다. 압도적으로 흐린 날에도 가끔 씩 웃어볼 일도 생긴다. 가족의 존재가, 아이들이 나를 찾으며 달려와 안길 때, 알 수 없는 에너지와 생의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러니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지금이 아닐 뿐 누구나 저마다의 날이 찾아온다. 999번의 새로운 경험 끝에 1000번째 전구가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포기만 않는다면 말이다.
내가 살아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한 끝은 없다. 우리의 끝은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빛의 소멸, 죽음뿐이다. 그전까지 녹음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또 퍼붓는 비를 보며 글을 읽고 나를 써 내려가는 작업을 해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이 행위로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반성하기도, 그렇게 새롭게 시작해 볼 길을 모색하기도 그러다 다시 실패하여 주저앉기도, 그렇지만 다시 차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환기를 시키며 신선한 공기를 맞이한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지금의 보폭으로 계속 걸어 나가는 것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스스로에게 하소연해도 된다. 그럼에도 또 걷는다.
갑자기 쏟아지는 함박눈 그리고 머리 위 소복이 쌓인 눈에 나의 어린 시절 감정들이 춤출 때, 나에게 용기가 찾아든다. 아주 사소한 용기가 말이다. 내가 걸어온 이 모든 길들이 시간의 쌓여감 그리고 계절의 변화무쌍함 가운데 시들기도 익어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의 하늘 바다 나무 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모든 이에게 들리지 않는다. 내 삶에 귀 기울이려는 아주 작은 노력을 하는 이들만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한번 들었다 하여 내일도 그 이튿날도 들릴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그 작은 노력들을 이어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보잘것없는 한걸음에서 비롯되고 그 힘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잔뜩 흐린 날도 우산을 들고 신발을 신고 오늘을 맞으며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나만의 성취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용기들을 잃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지길 소망하며 우리의 궂은날 또한 우리에겐 그저 감사해야 할 이유임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래도 지금 우린, 오늘, 바로 이 순간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