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샤우팅은 일관성이 있다.
지난 10여 년을 관찰하며 느낀 것은, 아내는 결과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수용하면서도 과정에 있어서의 성실, 진심, 최선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며 종종 감정적으로 격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공포스럽다. 눈치도 보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함을 느끼지만 일단 눈을 깐다. 샤우팅의 내용을 살핀다.
보통 주말에 이런 하이톤의 이유는 고정적이다. 아이들이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충실함이 보이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문제를 풀기는 하는데 한 문제 한 문제를 다 물어보며 푸는 것이다. 사실상 답만 적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답이 뭐야?'라고 묻는 두 아이들에게 아내는 부처의 미소를 머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하이톤에서 시작했건만 그마저도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 육성의 신비로움을 체험한다.
헛기침을 하고 자리를 뜨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내가 화내며 하는 소리에도 단막의 서사가 있다. 그리고 그 칼끝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켕기는 것이 있는 입장-뭐 이를테면 널브러져 있는 주말의 유유자적이랄까. 부지런한 아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백이다-에서는 이따금씩 아프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오늘의 공부, 오늘의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희들의 게으름의 대가라는 정도의 얘기만 있을 뿐 이에 대한 처절한 스토리의 나열이 없다. 아내의 의도일까.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과정에 있어서의 최선은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대게 '오늘 공부 다했어 안 했어?'라고 묻는 나와는 전혀 반대이다. 그렇다고 결과에 대해 무심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라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아내는 많은 시간 공을 들인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적당한 욕심'이라는 것이 있을까마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정도로 아내는 부모로 그 과정에 진심이고 최선이다. 그렇기에 당사자인 두 아이가 스스로의 할 일, 학업에 있어서 해태하는 모습에 아내의 언성은 높아진다.
아내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나는 손열음을 찾는다. 차분히 생각한다.
아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니 대단해 보이는 측면이 도드라진다. 과정에 있어서의 진심이라.
이십 년 가까이 영업만을 해왔던 내가 잊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만이 중요하고 그것이 전부라 믿으며 살아왔던 나, 그리고 그보다 과정에서의 진중한 의미에 더 무게를 두는 아내. 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함을 어느 순간 깨닫긴 해야 할 텐데 육성으로 혼쭐나고 이십 분 뒤면 또 잊어버리는 아이들. 어쩌면 가족의 적당한 긴장과 집중, 중요한 가치에 대한 상기를 위해 주기적으로 판을 짜고 벌이는 의도된 시나리오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정신건강을 해치는 수준의 샤우팅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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