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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넷에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것

그래도, 괜찮다

by Johnstory

경제활동의 휴지기가 길어질수록 괜찮지 않은 날들이 계속된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부터 시작되는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고요 속에서 읽고 쓰는 행위가 아닌, 어쭙잖은 실력으로 땀을 내며 달리는 일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숨이 차고 종아리가 땅긴다. 눈으로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을 달리고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출근길과 나의 귀가 길은 늘 겹치는 시간은 아주 잠시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지나버린 과거의 선택에 대한 다른 시나리오를 그려보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짓임을 알기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집을 향해 달린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 빽빽이 서있는 이들을 보니 아내에게 미안함이 든다. 작년 말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대다수의 직장인처럼 나도 지금 출근 버스 안에 있었을 테니 말이다.



명분이 있는 휴지기였으나, 꽤나 오랜 시간 나는 새로운 시작을 못하고 있고 그간의 저축과 투자로 모아둔 돈으로 지출만 하고 있는 상황은 서서히 나를 압박해 온다. 20년 가까이 내 자리에서 다양한 시도와 성과들로 말미암은 결과로 휴식을 합리화하던 나의 큰 목소리는 더 이상 힘을 내기가 어려워진다.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과 여전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나의 희망들이 오늘도 내 안에서 전투를 벌인다. 두려움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영역의 움직임으로 전이되고 곧 무기력이 된다. 이런 악순환이 되지 않게 해주는 루틴이 바로 새벽 조깅이니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양한 루틴들로 테스트를 해보았으나,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새벽에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시고 세수와 양치를 하고 바로 달리러 나가는 것이다. 날이 더운데, 비가 오는데, 시간이 좀 늦었는데... 와 같은 생각을 할 여지조차 주지 않고 바로 나가야 한다. 일단 1층에 나가면 나름 선선한 바람이 불 때가 있고, 아파트 사이로 뜨는 해를 바라볼 수도 있다. 이때만큼은 내 상황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한숨과 고민들이 깊어진다. 이마저도 피해 가기는 어렵다. 계속해서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할 뿐 이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으로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시간들의 묶음이 우리의 인생 아니었던가. 가끔 낭만을 찾더라도 거기에 취하거나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며 안락함에 도취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역시 현실적인 행동과 이상적인 상상을 좋은 배합으로 섞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젠 예전처럼 미친 듯이 기록하지 않는다. 짧지만 솔직한 것만 적고, 가급적 행동한다. 내가 지금 매우 두렵고 불안정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에 그 감정의 골을 딱 여기까지 만으로 제한하려는 담대한 시도이다. (그렇다고 기록이 무용하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마흔넷의 지금도, 마흔다섯의 내년에도, 마흔여섯이 될 내후년에도 내 하루와 내 시간 곳곳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쿨한 인정은 하지 못하더라도, 다소 불편하지만 받아들이고 그다음 챕터로 나아가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의 두려움은 아웃풋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한대 얻어맞았으니 일단 상처 한번 어루만져주고 what's next? 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향한 글이 되었건, 자신을 단련하는 달리기가 되었건 내 안의 에너지를 어떤 형태로든 분사하여 내면에 흩어진 두려움을 상쇄하는 것이 내가 이 시기에 잘 해내야 하는 것이다.



정말 많이 두렵다는 것은 인정하기까지 마음에 차는 글을 단 한편도 쓰지 못했음을 또한 고백하며, 언젠가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들리지 않는 외침만을 반복했던 숱한 밤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내가 경험했어야 하는, 아니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필요하다면 그런 용기를 내어야만 내가 바라는 새로운 시작이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몹시 두려웠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의 내 패배를 인정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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