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쓰지 못한 78가지의 글
내가 놓친 순간들이 서랍 속에 담겨있지만 그때의 상황 그리고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78번의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의 내용과 감정선은 시간에 묻혀버렸다.
언제든 이런 생각들은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니 당장 쓰지 못한다고 해도 손해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지 못한 아쉬움보다, 서랍 속에 쌓이는 글의 수가 늘어갈수록 자꾸만 쓸 힘이 고갈되어 갔다. 그것은 자신감의 고갈일 수도 있고 드러내기에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준 있는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도 아니건만 완벽을 기하고 싶었던 거다. 때가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쌓아가기라도 하는 순간들이 쌓여가면 언제든 화산이 터져나가듯 글이 뿜어져 나가는 때가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불행히도 그런 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작가가 되는 것이 제 인생 마지막 꿈입니다 라는 얘기를 인터뷰에서도 했었다. 왜 이런 얘기를 했는가 하면,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꾸며내지 않은 대답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그렇지만 노력은 의미 있다. 죽을 때까지 한 가지의 기쁨만을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어느 시기에, 창작의 기쁨이라 말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뀐 것인가 하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창작의 기쁨과 매일 새벽 제일 먼저 일어나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내와 딸과 아들을 바라볼 때의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은 견줄 수가 없을 정도이기에 쉽게 내뱉기가 어려운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 더 지나버렸고. 가끔 지인들이 이런 내게, 무척 가정적이고 좋은 아빠인 것 같다고 얘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부모가 되어 느끼는 기쁨이 세상 크다 하여도, 나 자신의 안온함보다 매 순간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도 나의 이기적인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여전히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의 개인주의적인 생각과 공동체로서 가족의 일원이기에 해야 하는 책무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방해받지 않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은 짧은 명상과 일기 쓰기, 독서와 조깅을 모두 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이런 새벽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매 순간 그것들을 잡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서랍 속에라도 넣어두고 있어야 그중 한두 개는 나름 형태를 갖춘 글로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화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재료들이 여전히 80개 가까이 쌓여있다.
마음에 부채가 생긴다. 그때그때 시원하게 배출해주지 못한 어느 특정 시기의 내 생각에 대해, 당시에 퍼덕이던 감정에 대해 미안함이 든다. 그리고 제때 부채를 변제하지 못한 나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즘 인생의 모든 법칙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터라 이런 상황은 내게 또 하나의 발견으로 남는다. 제때 갚지 못한 빚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부담을 감당해야만 한다. 결국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 중이다. 예외가 없다. 자신과의 약속에서 성실하지 못했던 나 자신은 가장 잘 발달되어야 할 쓰기의 근육이 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에 차지 않아도, 설령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 해도, 내가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에서도 신뢰가 없는데 타인과의 관계에선 어떨 것인가.
올해 남은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으로 부채의 카르마를 끊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시작한 내가 끝을 봐야 한다. 일도, 사람도, 물건도, 공간도, 나의 글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