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진실로 우연이었을까
소개를 받은 어떤 분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번 가을 초에 대면하던 미팅도 그 횟수가 줄어들던 차였는데, 새로운 인연을 비록 화상이긴 하지만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데에 감사했다. 예정시간보다 15분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의미 있었고.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은행원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흘러오게 된 나의 일들을 돌이켜봤다. 공식적으론 매번 '영업을 잘한다고 생각했기에'라는 전제를 나의 직업적 역사에 깔아 두었었다. 그게 진짜 그랬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왜 이제야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영업을 잘하는 직원이었나. 그리고 그런 연유로 나는 줄곧 세일즈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영어 과외를 시작으로 당구장, 주방보조, 홀써빙 등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했어. 2002년 월드컵 이전 경기장에 들어가는 화장실 문을 만드는 공장에 한 달 반가량 일을 해보기도 했다. 주어진 환경에 비해 꽤나 역동적인 이십 대를 보냈다. 얌전히, 동네의 친구들처럼 살지 못했다. 밖에서 함께하는 친구들 선후배들이 좋았다. 펍레스토랑에선 홀써빙을 하며 새롭게 맞는 손님과 단골고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아주 가끔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사람과의 인연이 좋았다. 그것이 훗날 인연이 아닌 것으로 끝을 맺기도 했지만, 한창 관계를 이어가는 순간엔 이후의 걱정들을 하지 않았다. 어리기도 했고 겁도 없었으며 지금에 충실했다. 편한 사람이건 아니건 곧잘 어울리고 모임을 만들고 또 운영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십 대 후반이 되었을 때 난 운 좋게 은행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 좋았고, 퇴근 후에 팀장님과 한잔 하는 시간들이 정겨웠다. 술을 좋아했으니 직장생활도 즐거웠다. 적어도 그날의 힘들었던 일들을 잊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못한 구석도 많았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보수적인 은행의 조직에서 불편부당한 상황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은행을 나와 제대로 된 영업을 해서 내 능력에 맞는 보상을 합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과연 그것도 합리적이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성과에 비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은행에 비해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차와 호봉이 아닌, 오직 실적이 전부인 조직이라 생각했던 보험사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조직은 아니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영업에 쏟다 코로나가 터졌고 다시 또 운 좋게 이커머스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세일즈 조직의 초기 빌드업에 참여하고 시간과 체력과 모든 에너지를 갈아 넣었다. 정말 말 그대로 갈아 넣었다. 재택근무로 매일 어린 두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잡았다. 그러다 마흔이 되던 해 한 스타트업의 세일즈 총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매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인연의 끈이 내게 다가왔고 나는 이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흐르는 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7년이 흘렀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의도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천 번 만 번 물어도 답은 늘 똑같다. 결코 계획하고 의도하지 않았다. 나의 일은 또 비슷한 분야로 나를 이끌었고 거기에서 또 새로운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터뷰 때마다 나는 영업의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대가라도 된 듯 포부를 이야기했다. 그것이 전부다 거짓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흐름에 따르다 보니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나의 계획함보다, 나의 예상보다 이것이 지금의 내가 있는 큰 이유라고. 그러니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정확히 설계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잘 흘러온 나의 삶이라면, 이제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길로 가봐도 제법 괜찮지 않을까.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보니 많은 것들에 대해 유해진 생각들을 갖게 된다. 집착이 없어지고 유연해진다. 직업적 성공 대신 가치 있는 보람을 찾게 된다. 가장으로서 우리 네 식구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번다면 그 이상은 욕심낼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성공이 아닌 자유를 갈구하는 나의 마흔 중반은, 나를 썩 괜찮은 사람 같다고 칭찬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나는 모르는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써 내려간 기정사실이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런 알아차림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어제의 나보다 성장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을 좀 더 나의 의지대로 빚어내는 시간들로 채워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조차도 아주 우연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