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
여러분은 문득 마음이 축 처지거나, 이유 없이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은 날, 어떻게 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기분 전환을 위한 '응급처치'를 찾으실 겁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런 응급처치마저 사치처럼 느껴지는 깊은 무기력의 늪에 빠졌을 때, 제가 저를 건져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요.
빠르게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을 기대하셨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저의 방법은 조금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니까요.
이유 없는 무기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원인이,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직면하고 인정하기 싫은, 내 안의 자존심과의 싸움'에서 비롯될 때가 많더라고요. '이 정도는 해내야 하는데' 하는 기대와, '도저히 해낼 능력이 없는'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 그 간극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차라리 모든 것을 멈춰버리는 '무기력'으로 도피합니다.
그래서 저의 첫 번째 단계는, 이 싸움에서의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 지금의 나에겐 이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 없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차가운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패배를 인정하고 나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눕습니다. 하지만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는 그 순간, 저는 제 머릿속에서 가장 치열한 '전략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 문제는 왜 발생했지? 내가 뭘 놓쳤을까? 이걸 해결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하지? 다음에 똑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지금 어떤 준비를 해둬야 하지?'
이렇게 억지로라도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작은 의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몸을 조금 움직일 정도의 에너지가 생기면, 기어서라도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방법을 터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저는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습니다. 지난 3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고난과 역경의 시기였죠. 아끼고 사랑했던 주변 사람들이 여럿 떠나갔고, 남은 몇 명과 겨우 으쌰으쌰하며 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때 저도 남들처럼 '응급처치'를 시도해봤습니다. 고뇌를 잊어보려 마신 술은, 더 빨리 깨서 고통과 마주하게 했을 뿐이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봐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불쑥 떠난 해외여행에서는 현실도피 중인 제 자신에 대한 불안감만 계속 맴돌았죠.
결국 그렇게 몇 달을 허비하고, 저는 도망치기를 멈추고 제 현실을 직면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왜 실패했는가? 왜 사람들은 나를 떠났는가?' 저는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능력이 없구나. 내게 필요했던 사람들이 떠났구나.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사람을 구하거나, 내가 직접 그 기술을 익혀야 하는구나. 나는 내 능력 이상의 일을 벌여서 수습하지 못하고 있구나.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보며, 나의 쓸모, 즉 효용감이 바닥을 치면서 완전히 무너졌구나.'
이렇게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면하고 무기력의 원인을 분석하다 보니, 아주 희미하게나마 어떻게 그 늪을 빠져나와야 할지가 보이더군요.
그날 이후로 저는, 끊임없이 작은 목표를 만들고, 실천하고, 계속 일을 벌여왔습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무언가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조금씩 기특해졌고, 어느새 다시 제 자신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지칠 때, 주저앉아 있기보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해내고, 실천하려고 아등바등합니다. 그리고 그 아등바등하는 제 자신을 칭찬하며 버팁니다. (물론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이 방법이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에게는 충분한 휴식, 운동과 함께 생각을 정리하는 이 방법이 다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신만의 깊은 무기력과 싸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의 방법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 어둠을 빠져나오는 길은,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의 진짜 문제'와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직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무기력과, 그 안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곳이 필요하다면, '익스펙타클'을 찾아주세요. 우리는 서로의 어둠을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