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한 10개월 전쯤 이제 막 석사를 마친 사람이 회사로 입사를 했다. 첫 직장이고 분야도 다르니 상당히 낯설어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있었었다. 벤처의 특성상 초기 멤버들이 이미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은 사람들로 구성되어서 그런 건지 새로운 직원의 평가가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았었다. 이해도가 빠르지 않다던지 그래서 여러 번 설명을 해줘야 한다든지 하는 말들이 뒤어서 조금씩 흘러나왔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직원에 대해 기대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그 직원은 이제 막 석사를 마친 사람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회사에서 보여준 직원의 태도였었다.
대학원을 가서 석사를 했다면 뭔가 대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실상 학부 졸업생에서 실험 경험을 조금 갖는 정도의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인력에게 경력직, 박사급의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건 너무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 그 직원에게서 성장성을 본건 그의 태도였는데 그는 항상 엄청난 실험을 불평 없이 진행했고 그 과정에는 곁에서 지켜만 보던 나에게도 큰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었다. 야근이 거의 없는 회사임에도 맡은 바 일을 마무리하려 늦은 퇴근이 많았었고 실험이 잘 안돼 기운이 빠지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었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어려운 실험 하나를 8개월 만에 해냈었다. 모두들 격려했고 나 역시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연구의 결과라는 것은 많은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결국 연구자의 인내와 꾸준함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똑똑한 사람들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똑똑할수록 어려운 문제도 큰 질문들도 해결하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든 연구소든 자기에게 주어진 질문과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결국 엉덩이 붙이고 끈기 있게 일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후배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도 그런 경우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놀라운 생각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상황에도 계속 붙들고 늘어져 결국 답을 찾아냈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극작가인 김은희 작가가 글은 엉덩이와 다리로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었다.
천재성에서 기인하는 무한한 상상력이 아니라 삶 속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접하고 그걸 긴 시간 동안 녹여내야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쓴다는 말일 것이다.
연구 혹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맞닥뜨리고 해결에 나가는 상황에서 결국 평범한 사람의 끈기와 집념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