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완독을 하고 난 후에는 공허한 마음이 일었다.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고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삶이 잔인하게 느껴졌고, 그 가여운 삶이 죽음으로서 마무리 된 결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한스 기벤라트가 마을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영웅적인 존재가 아닌 평범한 아이로 여겨졌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최근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때 친구들이 목표하는 길이 몇 가지 안되는 길로 유형화 되어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받았다. 공부를 잘 하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친구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간혹 앞의 2가지 길 외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대단하다는 의미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쉽지 않은 길을 택한 용기에 대해 보내는 말이었다. 모두들 그 용기를 부러워하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위한 단계들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길을 선택한 친구를 은근히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는 눈치였다.
한스 기벤라트의 사회에서도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형화 되어 있다. 그 길에 오르기 위해, 총명한 아이들은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을새라 신학교에 입학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주위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한스에게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신학자를 배출하여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욕망은 어느 순간 한스가 이뤄야 하는 목표가 되어 있었다.
삶에 대한 어떠한 자극이나 감동 없이, 목적 없는 목표만을 쫓던 한스에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하일러, 엠마와의 만남은 미동 없던 그의 삶에 파장을 일으키는 조약돌과 같았다. 한스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로부터 잠깐 자유로웠을 때 자연과 일상에서 느꼈던 은근한 활기는, 두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슬픔,분노,기쁨과 사랑의 다양한 감정들로 심화된다. 삶이 주는 자극을 이제서야 느끼기 시작한 소년에게 이러한 경험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를 산산조각나게 만든다.
단 한번도 온전히 스스로에 의한 주도적인 결정을 해 보지 못한 한스에게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이유가 희미해지는 것, 또한 어떠한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방황하는 한스에게 주변 인물들은 그를 더욱 몰아부치다 급기야는 포기하고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또한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 주었던 인물들은 잔인하게도 한스에게서 떠나가고 만다. 타인의 욕망들의 결집체였던 한스, 그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욕망들마저 떨어져나갔을 때 그는 이미 죽은 존재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인물이 한 순간에 낙오자로 낙인 찍혔을 때 오는 좌절감, 또한 그 좌절에서 빠져나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탄력성이 한스에게는 없었다. 또한 성공만을 맛본 인물이 처음 겪어보는 큰 실패의 무게는 그를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한스는 왜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죽어야만 했을까? 무거운 수레바퀴가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칠 힘이 없었을까? 수레바퀴 아래 깔린 그를 도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은 왜 없었을까?
줄기를 잘라 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 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한스 기벤라트도 그랬다.
나는 줄기를 잘라 낸 나무의 뿌리에서 움튼 새싹도 나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뿌리에서 움튼 새싹이 꼭 원래 자라난 나무의 뿌리에서 성장해야 하는 법은 없다. 새싹이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땅에 심어지고 적절한 비와 햇빛, 바람과 생명들을 만나면 늠름하고 견고한 나무가 될 수 있다.
삶을 통해 많은 경험에 도전과 실패를 겪은 사람은 수레바퀴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길러낼 수 있다. 수레바퀴 위를 돌다가도 발을 잘못 헛딛었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른 수레바퀴를 굴려볼 수 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다양한 조력자들을 만나 직접적인 도움을 얻기도 하고, 그들이 수레바퀴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접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잠깐 목적을 잃을 수 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난 삶을 돌아보고, 또 미래를 그리며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리는 과정에 있다. 그 누가 어떤 수레바퀴 안에서 살고 있던, 혹은 수레바퀴 어느 위치에 있던 마음만 먹으면 유연하게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삶의 다양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도전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많은 풍파를 겪고 흙 위로 힘껏 돋아난 작은 생명들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