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 Jan 14. 2018

냉기의 갑옷을 입고

하얗게 질린듯한 피부를 가진 너는

투박한 수통에 입을 대고 넘긴다.

꿀꺽

또 꿀꺽

통 안의 액체가 목을 넘어간다.

꼴깍

또 꼴깍

헤시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서는

눈꼬리는 축 내려와서는

털 달린 신에 몸을 싣고 나아간다.


하얗게 눈이 덮힌 순백(純白)의 숲.

저벅저벅

너는 그리 크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숨이 조금 찬 듯

살짝 붉어진 얼굴에서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달팽이보다 느리게 또 걷는다.


문득

너는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어느 생명체 하나 존재하지 않는 순백(純白)의 세상.

빨알간 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하얗게 쌓은 눈 위에

싸늘히 식었다.


고개를 돌려

눈이 쌓인 길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코를 흥! 풀어제치고

돌려지지 않는 발을 들어

또 저벅저벅

달팽이만큼 느리게 또 걷는다

사그라지지 않을 듯한 백야의 끝을 향해...

 

매거진의 이전글 감출 수 없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