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질린듯한 피부를 가진 너는
투박한 수통에 입을 대고 넘긴다.
꿀꺽
또 꿀꺽
통 안의 액체가 목을 넘어간다.
꼴깍
또 꼴깍
헤시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서는
눈꼬리는 축 내려와서는
털 달린 신에 몸을 싣고 나아간다.
하얗게 눈이 덮힌 순백(純白)의 숲.
저벅저벅
너는 그리 크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숨이 조금 찬 듯
살짝 붉어진 얼굴에서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달팽이보다 느리게 또 걷는다.
문득
너는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어느 생명체 하나 존재하지 않는 순백(純白)의 세상.
빨알간 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하얗게 쌓은 눈 위에
싸늘히 식었다.
고개를 돌려
눈이 쌓인 길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코를 흥! 풀어제치고
돌려지지 않는 발을 들어
또 저벅저벅
달팽이만큼 느리게 또 걷는다
사그라지지 않을 듯한 백야의 끝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