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화 속 주인공은 누구나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 사랑의 모양

by 서영

매년 봄이 시작할 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된다. 어느 작품이 노미네이트 되고, 몇 관왕을 타며, 누가 상을 받을지 관심이 집중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여러 작품들이 물망에 올라있다. 그 중 돋보이는 후보로 꼽히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가 상영되고 있어 2월 문화의 달 행사에 맞춰 예매를 했다.


벙어리 여인과 괴물의 사랑이야기.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에 대한 소개는 간략한 이 한 줄만 알았다. 어두운 공간적 배경으로 동화같은 미술음악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스토리 전개와 결말을 보며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은 영화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매거진에 영화평을 남기지 않을 줄 알았다. (봤어도 글을 쓸 수 없다 판단되면 안 쓴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고 내용을 곱씹어보니 이 아기자기한 동화같은 영화를 꼭 봐야하는 이유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여, 이렇게 급히 글을 남긴다.


시대적 배경은 언제인가?


영화 중간 장군과 책임자의 대화를 통해 이 둘이 십여년 전 '부산 전투'를 통해 상하관계를 돈독히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잊을 수 없는 6.25전쟁에 참전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고, 영화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한 우주센터. 그래서 영화 속에는 소련 스파이도 있고, 흑인의 식사를 거부하는 무시와 차별이 있으며, 게이에 대한 극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미국의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말하지 못 하는 벙어리 여인 엘라이자와 괴물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있다.


왜 여자 주인공은 벙어리일까?


장애인. 이 단어로 지칭되는 사람을 바라볼 때, 가장 흔히 떠오르는 감정은 '불쌍함'이었다. 도와줘야 하는 존재, 혼자 살아가기 힘든 존재, 나는 그랬었다. 그렇게 느꼈었다. 그러나 영화 속 여주는 음악의 감성, 춤의 흥겨움, 고양이와의 공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의 독립된 사회적 인간이었다. 덧붙여 이성과의 사랑을 꿈꾸는 정열도 갖추었다. (다소 놀라운 욕조씬은 이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부족한 존재, 불쌍한 존재로만 바라보았다. 영화 중간 왜 괴물을 구해야 하냐는 질문에 소리없는 열변을 토하는 엘라이자의 몸짓에 나는 얼마나 많은 외양으로, 껍데기로, 외피만으로 판단하는가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괴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마존 강 깊은 곳에서 살던 그는 원주민들에게 신으로 받들었다한다. 각자의 안녕을 빌기 위해 꽃, 과일 등과 같은 제물을 물 속에 던져지면 그걸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천 킬로의 길을 동행한 책임자는 괴물이라 불렀고, 스파이는 연구가치 있는 놀라운 생명체라 했으며, 엘라이자는 자신을 특이하게 바라보지 않는 존재라 했다. 그는 n면체이다. 내가 어떠한 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세상 가장 흉폭한 괴물이 되기도 하고, 같이 음악을 듣는 친구가 되기도 하며, 함께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되기도 한다. 관객들도 그의 단면을 자세히 봐주길 바란다. 그대는 어떤 면을 보았는가?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조금씩 여운이 오는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극장을 나설 때의 찝찝함은 되새김을 통해 여운으로 남았다. 남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던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규격에 맞는 우수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 규격 속 우수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과 입맛에 맞춰 존재를 억압하고 군림하려만 하였다. 괜찮다. 규격에 맞지 않아더라도 생명을 살리려는 비주류의 사람이 되는 거 더 나을 거 같다. 엘라이자가 말했듯이 그게 좋은 사람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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