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돌된 아이 설득하기.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며느리가 음식을 준비하고 초대하여 모든 가족이 모였다. 음식을 차리는 동안 항상 할아버지를 보며 울던 손녀는 미리 준비한 곰돌이 젤리를 꼬옥 쥐고 최고포식자 앞에서 살기 위해 얌전히 눈을 굴리는 초식동물 같이 무서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열심히 눈치를 보고 있다. 입이 터서 뭉개진 발음으로 조잘조잘 말하는 손녀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입을 앙 다문다. 정확히 호칭을 알려주면, "하기 싫~~~어!"라 말하며 밀당을 할 줄 아는 3살이다. 준비한 치즈 케익에 초를 꼽고 불을 붙이자 천진하게 후~ 불며 초를 끈다. 조금씩 케익 잘라 먹지만 매우 달디단 케익이 절반정도 남았다.
손녀가 일어서서 케익 위를 후~하고 분다. 또 분다. 식구들이 하나둘 쳐다본다. 또 후~분다. 눈치를 챈 고모랑 할머니가 박수 쳐준다. 방긋 웃으며 스스로 또 박수를 친다. 계속 노래 부르고 후~분다. 엄마가 남은 초 2개를 주니 스스로 케익에 초를 꼽는다. 애연가인 아빠가 불을 켜주자 박수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요령이 없어 잘 불지 못하지만 여러 번 불어 촛불을 끈다. 근데 이상하다. 삼촌이 박수도 안 치고 노래도 안 부르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상하다. 손녀는 계속 삼촌을 힐긋힐긋 쳐다본다. 보다못한 고모가 버럭 한 마디한다. "박수도 치고 호응 좀 해라. 안 하니까 쳐다보잖아!"
이제 무한반복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생일 케익이니 아직 초는 충분히 남았다. 후우~ 후우~ 와아~~~~ 짝짝짝짝짝~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반복하는 손녀와 달리 나이든 어른들은 하나둘씩 나가떨어진다. 어느 순간 고모와 삼촌은 바닥에 탐관오리처럼 드리 누웠다. 엄마이자 며느리는 시댁 식구들의 지침을 눈치채고 단호히 말한다. "이제 그만~ 불님도 이제 오래있었으니까 코~자러 가야지~" 무서운 할아버지도 엄마편인지 고만하라고 한다. 단호하게 안 돼를 말하는 엄마에게 초를 빼앗긴 손녀는 개구리처럼 볼을 부풀리고 입을 삐죽 내밀며 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곧 공룡같은 포효가 터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고모는 조카가 속상한 것을 알고, 두 손을 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더 후~하고 싶었는데, 못 해서 그러는 구나. 속상하겠다. 그런데 엄마가 말한대로 불님이 오늘은 너무 오래 있어서 코~ 자러 가야 한데~ 오늘은 불님이 힘드니까 쉬게 해주고, 세 달 후에 네 생일에 다시 후~ 하자. 우리 그 때 다시 하자~ 그럴 수 있지?"
곧 울음을 터트리며 땡깡을 보일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조카의 굳은 고집이 느껴지는 앙 다문 입매에서 고모는 자기와 똑닮은 조카의 성정을 느꼈다. 다행히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을 쏘옥 집어 넣고 처음으로 고모 품에 안겨 무릎에 앉았다.
그렇다. 최고의 설득은 이해와 공감이다.
사람은 감정이 있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이에게 적대감을 누그러뜨린다. 두돌된 아이이지만, 자신을 헤아리는 말을 건낸 고모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가끔은 감성을 헤아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눈에 아롱진 눈물이 꽤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