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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Oct 04. 2018

나는 이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가로서의 꿈이자 목표는 무엇인가요?

나만의 8월 목표였던 1주일에 하나 이상의 글을 발행하자던 다짐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맞닥드린 첫 슬럼프로 인해 산산히 날아가 버렸다. 처음으로 쓰고 있던 글의 방향을 잃어버린 이 경험은 나를 작은 방에 가두게 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다시금 하게 하였다. 이렇게 9월을 맞이하고, 추석을 맞이하였다.


맑은 공기가 매일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던 추석 연휴 첫 날. 오랫만에 얼굴을 보는 사촌동생과 달달한 레몬 타르트를 곁들여 따뜻한 차를 근사한 밤의 테라스에서 마시며 즐거운 대화의 장을 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내던 근황과 미소와 다정한 말 속에 이러한 나의 슬럼프를 스치듯 흘리게 만들었고, 일주일 후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올해 첫 한강 라이딩을 마치고 좋아하는 찻집에 앉아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 주제가 떠올랐다.


글을 쓰고 싶다 마음을 먹고나서부터 어느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존경하는 이청준 작가님처럼 소설을 쓸까, 마키아벨리 덕후인 시오노 나나미 같이 대중을 위한 인문학을 쓸까, 즐겨보는 네이버 웹소설 같은 장르소설을 쓸까 했으나 답은 의외로 빠르게 나왔다.


취직이 되지 않아 대학원을 고민하던 시절, 진학을 안 했던 이유는 내가 공부하고픈 전공이 철학이었다. 문사철이 취직이 어려운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리라. 철학자가 되고 싶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였다. 조용히 연구실에 앉아 사유의 바다를 부유(浮遊)하다 지성의 낚시대로 간간이 힘들게 건져올리는 진리를 논문으로 써낼만큼 인내와 지구력이 필요한 작업은 훌훌 세상을 돌아다니며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신기함과 새로움을 탐닉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아하는 쾌락적인 나에게 옭아매는 족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싶게 만든 건, 언제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 대학생 시절에 읽은 신문 기사였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 구독하던 여러 섹션으로 이루어진 신문에서 토요일마다 발행되던 책 섹션을 즐겨봤었다. 여느 때처럼 첫 장 메인 기사를 읽고, 옆에 박스쳐진 이 달의 신간을 읽다가 놀라운 단어를 발견하였다.

악의 평범성


소개하는 책의 제목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유태인 대량 학살을 한 히틀러의 오른팔인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취재한 독일 출신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취재 후 쓴 르포였다. 


설명충, 진지충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남들이 쉬이 지나치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상상하고 사유하던 것을 남에게 알리기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나에게 생각 없이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세우지 않고 살아온 보통 사람이 벌인 비극을 서술한 책을 소개하는 그 글은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지 않다. 항상 해왔던대로 상상하고 생각하고 사유해도 괜찮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삶을 대해도, 진실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도, 그래도 괜찮다. 이 위로에서 가장 핵심이 악의 평범성 이라는 단어였다. 


안나 아렌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저서에 적힌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는 살아남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똑같은 악몽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외친다. 어렵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지만, 듣자마자 그 안에 담긴 깊이가 느껴지는 단어를 남기는 것. 따스하게 마음을 채워 주었던 위로가 되는 글귀를 남기는 것. 거창하지 않은 작가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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