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아직까지도 혼자일까?
카페인에 예민한 체질을 지녔기에 가끔은 미열과 함께 불면의 밤을 보내곤 한다. 그런 밤에는 카페인 덕분에 우울한 감성이 폭발하여 이런 저런 글을 끄적이게 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솔로의 한탄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연애와 결혼에 대한 나름의 환상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갈 수록 뜨거웠던 가슴은 아스라이 식어가고 어느덧 시큰둥한 표정을 자주 짓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세상이 어떨지라도 현실이 어떨지라도 두렵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나의 부족한 반쪽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완전한 하나가 되길 바라왔다. 그리고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지 내가 먼저 하겠다 마음먹지 아니함을... 그래서 나처럼 마음과 열정을 내던지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했으며, 그냥 무난한 연애를 하길 원했다.
이터널 썬샤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사랑이 너무 아팠음에 그 기억을 다 지워주는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한 남녀의 이야기이다. 무수히 많은 평론가들과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명작으로 꼽을까란 궁금증에 포털사이트 영화평에 들어갔다 깜짝 놀랐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지난 사랑에 대해 눈물 펑펑 흘리며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온갖 감정이 섞여 만들어내는 회한들로 가득 차, 댓글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사랑의 역사가 담겨있으며, 지나간 사랑에 대한 고해성사가 모여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와 닿는 것이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추억하게 되는 사람도 없었다.
난 항상 상대에게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바랐었고, 그들은 이런 나의 기대를 부담스러워 했다. 기대를 눈치조차 못 채던 이들에게는 상처를 주었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던 나는 그것을 갖기 위해 상대에게 크고 위대한 사랑을 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친 것 뿐이었다. 오랜 시간 살아보면서 사랑이 알지 못 하고 한 번 제대로 나눠 보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이 글은 나의 흑역사 중 한 페이지이며, 나의 고해성사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라는 자만심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단점을 콕 찝어 신랄하게 비판을 하며 말재간이 좋은 재능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지금껏 살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 주었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만심에 취해 있던 나는 그 말을 흘려버렸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여전히 옆구리는 허전해서 방 구석에 쳐 박혀 있으면서도 '도대체 내가 뭐가 못 나서!!!' 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씁쓸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컴퓨터를 켰다. 마음 속에 있는 정리되지 않았던 말들을 카페인에 취해 자판을 두들겨서 날 것 그대로 화면 속 언어로 옮겨 놓았던 글이 보였다. 몇 달 전에 끄적여 놓은 글이다. 우와~ 나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구나...
왜 나만 없어! 왜 나만 안 돼! 라는 불만 가득한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신세한탄을 하는 술 취한 주정뱅이처럼 감정을 토해놓았다. 지저분한 토사물을 좋아하는 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더러운 비둘기 뿐,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토사물을 향해 걸어오지는 않는다. 나조차도 토사물은 커녕 비둘기에게도 다가가기 싫지 않은가!
글은 가끔 가라앉은 빙산 같이 억지로 억눌러 놓은 내면을 드러내 준다. 나는 성인군자만큼 훌륭하지. 암암 그렇고 말고~ 자뻑에 빠져 있을 때도 카페인에 취해 화면을 띄우고 자판을 두들기면 숨겨 두었던 찌질함과 불쌍함과 이기적인 사고와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또 그것을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멋들어지게 포장하여 글을 쓴다. 그래 이거지~ 난 잘 쓴다니까!
그렇게 각성의 시간이 끝나고 보통의 쪼그라든 내가 또 다시 성인군자인양 착각하며 살아가다 이 글을 봤으면 좋겠다. 너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실수도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충분히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까칠하게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다. 왜 나만 혼자지 묻기 전에 상대에게 관대해질 연습을 충분히 해라.
오늘도 쓰디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카페인에 취해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