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다

양곤(랑군)에서 시내버스 타기

by 서영

먹구름과 함께 한 양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제 우산을 잊어버렸는데, 더는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사위가 어둑해지니 어느덧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라 여행 책자에서 봐 둔 맛집에 가려고 버스를 타러 갔다.


양곤 시내버스 표지판은 노선번호도 현지어로만 적혀 있다. 심지어 시내버스 어플도 현지어로만 노선번호가 적혀 있으며, 글자 차이를 알아내기에는 버스에 붙어 있는 글자체와 어플의 글자체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바로 문맹으로 만들어버린다. (다행히 많은 수의 버스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노선번호가 크게 붙어있다.) 영어가 쓰여 있는 자비로움 따위는 없기에 온갖 스마트한 기기로 무장하고 혼자 잘 다닌다고 잘난 척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아주 오랜만에 아날로그적 접근을 필요로 하게 한다. 그래도 여기는 외국이기에 나름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선량한 세상 사람들은 외국인이 곤란함이 깃든 멋쩍은 미소와 함께 무언가를 물으면 매우 친절하게 알려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옆에 서서 역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인 아가씨에게 '익스큐즈 미'를 하면서 물어보려 했다. 아... 기본적인 영어조차도 모르시는 분이다. 이럴 때 남은 방법은 바디랭귀지뿐... 내 스마트폰의 버스 어플을 보여주며 내가 타고픈 버스 번호를 가리켜준 다음, 핸드폰에 저장해둔 현지어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가 그려진 표를 보여주었다. 그분이 보시더니 7과 5를 가리켜주신다. 아하~ 75번 버스를 타야 하는구나.

땡큐~를 외치고 75번 버스가 도착했는지 두리번거리는데, 그분이 자기 지갑을 손으로 가리키신다. 오호~ 버스 요금을 낼 돈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시는구나~ 하하하, 이미 몇 번 타 봐서 가격을 알고 있어요. 지갑에서 꺼내서 100짯 보여드려야지~


지갑을 여는데, 빽빽한 고액권과 500짯짜리 한 장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헐... 나름 잔돈 만든다고 1000짯짜리로만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잔돈을 다 써 버렸다. 순간 당황해서 눈만 껌뻑이는 나에게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아라, 기다려라 손짓하고 본인의 지갑을 열어 100짯 꺼내 건네주신다. 당장 필요하니 받았다.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내 지갑에서 붉은 500짯 지폐를 꺼내어 보여드렸다.


그분이 순식간에 정색하시며 두 손으로 X자를 그리셨다.

눈 깜박할 사이에 표정이 굳어 강하게 부정하는 모습에 내가 매우 실례되는 행동을 한 듯하다. 얼떨떨해서 다시 지폐를 지갑에 넣고 고개를 살짝 숙여 땡큐라 작게 말했다. 바로 75번 버스가 도착하였다. 몰리는 인파와 함께 버스에 올라 그분이 주신 100짯을 요금함에 넣었다.


무언가를 주어도 어느 순간 이를 편하게만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나 보다. '호의'라는 말로 베푸는 친절에 대해 의심부터 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일례로 누군가 밥을 사 줘도 일종의 빚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밥을 얻어먹으면 물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마치 빚을 진 것처럼 반드시 돌려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기브 앤 테이크'를 꼭 한 사람에게 모두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해보니, 살아온 삶에서 어떤 이에게는 '테이크'만을, 어떤 이에게는 '기브'만을 받은 적도 많은 거 같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날 안 좋아하고, 관심 없는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연애의 웃픈 법칙같이...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말하는 '이웃 간의 정(情)'이 바로 이런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이지 않을까? 집에 엄마가 없으면 옆집에 가서 엄마가 올 때까지 그 집 아이들과 놀고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당연시했던 그리 멀지 않았던 예전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말이다.


누군가의 베풂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가짐. 이 자세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세상을 여유 있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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