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러의 마인드셋

본업에 감사하고 주캐에 충실하기

다음 주면 사업자등록증을 낸 지 딱 2년이 된다. 그 때는 당장 때려 치울 심산이었기에 이리 오래 주캐와 부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부업이 본업의 수입과 규모를 뛰어 넘고, 파트타임 노동력으로는 도저히 더는 병행할 수가 없고 병행할 필요도 없어질 정도는 아직 전혀 아니어서 양다리 기간은 내 계획보다 길어지고 있고 내 사업의 성장 속도로 보아 더 길어질 것 같다.

100살은 장수라고 어디 명함도 못 내밀 시대가 곧 오기에 퇴사 후를 준비하기 위해 투잡을 시작한 것도 맞긴 맞지만, 사실 그 보다는 현재 회사에서 인정 못 받고 잘 안 풀려서 고민 중에 시작하게 된 거라 내게 투잡은 빨리 현재 회사를 나오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러다 보니 두 가지를 1년 이상 병행하는 건 원래 내 계획엔 없던 옵션이었다.

둘 중 하나 이상이 분명해질 때, 바로 그 때가 결단을 할 때가 아닌가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해 본다. 즉, 1)본업에서 더이상 희망이 없거나, 2)부업에서 큰 희망이 보이거나, 3)두 가지가 동시에 왔을 때.

이 기준을 대입하면 현재 내 상황은 둘 다 어정쩡 하다. 시각에 따라서는 1)번의 내 상황을 벌써부터 Y로 놓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나쁘지 않다' 정도는 되니 N, 2)번도 몰려드는 주문에 몸져 누울 지경이 아니니 N.

생애 처음 부업을 해 보고 내 사업을 해 보니 과연 내 페이스는 다른 모든 일에서 그랬듯 저속이다. 그걸 알고 나니 투잡을 생각보다 오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와중에 평가 시즌이 왔고, 그래도 작년 한해는 착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한 덕분인지 재작년보다 평가가 좋았다. '부업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주는 본업을 감사히 여겨야지'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회사 연봉은 평가를 나쁘게 받을 때와 좋게 받을 때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연봉 금액 보다는 점수화되어 나오는 평가가 나의 기분과 그 해 사기를 결정한다. 결국 내게 중요한 건 한 만큼 알아주느냐, 곧 인정받고 있느냐의 문제라서 이번 평가는 앞으로 1년을 버틸 이유를 만들어 준 셈이다.

어쩌면 부캐가 주캐를 자빠뜨리는 그 날이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리라.

오직 명확한 건 현재 주캐의 유효 기간은 유한하다는 것, 지금 내가 설정해 놓은 그 부캐가 주캐를 대신할 지는 알 수 없어도, 현재의 주캐는 스러지고 새 것이 내 주캐가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지금은 내가 희망하고 설정한 미래의 주캐가 실현되게 하기 위해 부캐의 모습으로 실험하고 있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너무 매몰차지 않게, 조금은 미련을 남기는 뒷 모습을 허락하는 게 대학 졸업 후 20년이 넘게 열일한 주캐에게도 덜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