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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5. 2020

시간은 멈추고,
소녀는 우리를 바라보고

2014.4

주님.

어찌하여 이러한 죽음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그날 이후 눈앞을 떠나지가 않습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두려운 눈망울로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모습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이 깊은 심연에 가두시나요?

그날 이후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말해왔듯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면 안전할 거라 믿으며

끝내 자리를 지키던 학생들이

90도로 꺽인 선실로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를 때

소녀 소년들이 경험한 그 잔인한 배반을…

갈갈이 갈갈이

가슴이 찢겨져 나갑니다.


주님.

어찌하여 옴짝할 수 없게 우리를 시간의 감옥에 가두시나요?

그 순간 우리의 시간은 모두 멈추었습니다.

24시간, 48시간, 72시간...

그러나 그 검은 바닷물 속으로

시간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방에 갇히던 그 사람들의 눈망울도 그랬었나요?

철문이 잠기고 가스가 차오를 때 그 사람들의 가슴도 그랬었나요?


주님.

다시는 경험치 않을 것 같았던 

그 시퍼런 죽임을

왜 우리 생활 앞에 펼쳐놓으시나요?


그래요.

그토록 우리는 깨끗한 눈망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헛된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그저 앞을 향해서만 치달았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 차가운 가슴이

모든 선진 기술로도 꼼짝하지 않는 쇳덩어리가 되어

시커먼 바닷속에

소녀 소녀들을 가두어버렸나요?


시간은 멈추었고

또다시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두려운 눈망울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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