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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6. 2020

토리노의 말과
니체의 위버멘쉬 철학

1889 년 1 월 3일 토리노.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의 집에서 외출을 나선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밖으로 나선다. 산책하거나 우편물을 가지러 갈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말은 움직일 줄 몰랐다. 마부는 참다못해 채찍을 휘두르고 만다. 니체는 인파로 다가가서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의 잔혹한 행동을 말리려고 한다. 건장한 체구의 니체가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낀다. 이웃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 있다가 비로소 몇 마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린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그 후로 10년 동안 그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얌전하게 정신 나간 상태로 누워 있다가 죽었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에 근거하지만 단어 하나하나의 쓰임새에 따라서 아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며, 그에 따라 니체의 정신병 내지는 그의 철학 전반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반향을 일으킨다.


가장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니체는 말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는가? 말이 주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래서 주인의 채찍질을 받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그리고 채찍질당하는 '노예'의 처지인 말에게 동정과 연민을 가지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즉 위버멘쉬의 태도는 아닌 것이다.


연민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삶을 나약하게 만드는 가장 적대적인 감정이라고 설파했던 니체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온 연민의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폭발해 채찍질당하는 말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과잉행동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섬광처럼 자신의 모든 철학이 모순임을 직관적으로 체험하고 정신줄을 놓게 된 것인가? 그래서 나는 바보였다, 라고 고백한 것인가?


이 해석이 가장 그럴듯하지만 너무 낭만적이다. 너무 단순하다. 니체를 우습게 만든다. 니체는 한평생 노예로 살아온 말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주체적 존재가 되려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고 그러한 초월을 향한 일탈이 감당해야만 하는 대가, 즉 채찍질, 즉 현실의 냉혹함을 직감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일까? 이 경우 니체는 자신의 위버멘쉬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 현실성을 목격하고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가지게 된 것이 된다. 


이 해석은 다소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주며 니체의 나머지 10년의 삶을 정신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간 사실을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합리적인 반응이다.


니체의 철학은 생을 향한 의지, 힘에의 의지를 통해 생을 긍정하고 생을 고양시키는 의지가 핵심이다. 이런 철학은 니체를 둘러싼 독일 철학 그리고 민중의 삶을 지배하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이 모든 생명이 자기 종족의 유지와 확산에 본능적으로 집착한다는 주장을 넘어서서, 모든 생명은 스스로를 고양시키려는 본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위버멘쉬 철학이 디딜 수 있는 받침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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